<최인한의 일본 바로 보기> 2만 돌파 일본 증시에서 뜨는 주식 찾아봤더니 … 주도주, 독점 기업에서 혁신 기업으로

일본 증시 15년 만의 강세장 주도 종목 달라졌다
'독점 기업'에서 '혁신 기업'으로 대표 주식 세대 교체
4월 초 일본 간사이(서부)의 고베시에 잠시 다녀왔다. 알고 지내던 일본인 교수들과 재일교포 지인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일본 실물경제가 지난해보다 확실히 좋아졌음을 실감했다.1990년 일본에 유학와서 현재 부동산업을 하는 K씨(52)는 최근 6개월 새 주식투자로 1000만 엔(약 9000만 원)을 벌었다며 환한 얼굴이었다. 투자원금은 3000만 엔이라고 밝혔다. 그가 멋진 일본식당에서 저녁을 샀다.

22일 일본 증시는 15년 만에 2만 엔대(종가 기준)에 다시 올라섰다. IT(정보기술) 주식 버블기의 2000년 4월14일 이후 15년 만이다. 닛케이평균주가는 23일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올 들어 일본 증시가 급등한 가장 큰 배경은 주요국의 금융완화로 생긴 풍부한 자금이 일본시장으로 밀려들고 있는 덕분이다. 15년 만의 일본 증시 강세장에 주목할만한 점은 주도 종목의 '얼굴'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주가 2만 엔 돌파는 일본경제가 디플레이션(물가하락)으로 장기 침체에 빠진 ‘잃어버린 15년’에서 벗어나 재성장의 출발점에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 증시를 이끌고 있는 대표주는 예전의 ‘독점 기업’에서 ‘혁신 기업’으로 교체됐다.

일본 증시가 2만 엔대에 처음 올라선 것은 1987년 1월30일. 시가총액 기준으로 상위권을 휩쓴 종목은 도쿄전력과 시중은행 주식들이었다. 2000년 4월에는 정보통신(IT) 관련주들이 주목받으며 급등, 주가수익비율(PER) 100배를 넘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두 차례의 버블(거품)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지진, 엔화 강세 등을 거쳐 현재 증시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주식은 스스로 노력해 존재감을 높힌 기업들이다. 도요타자동차는 판매대수가 늘지 않아도 이익이 나도록 비용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 2014회계연도에 2조 엔이 넘는 순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공작기계 세계 1위 파낙, 유니클로로 세계시장을 개척한 패션업체 패스트리테일링 등의 시가총액은 크게 불어났다.2000년 상장한 라쿠텐 등 인터넷 관련 기업들의 성장세도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신규 상장업체는 리쿠르트홀딩스 등 80여개에 달해 7년 만에 가장 많았다. 도쿄증시의 시가총액도 600조 엔을 넘어 1989년(611조 엔) 사상최고치에 근접했다. 도요타, 패스트리테일링 외에 미쓰비시전기, 브리지스톤 등 최고이익을 경신해 사상 최고 주가를 기록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이익 증대를 동반한 기업들의 주가 상승에 힘입어 상장사들의 PER은 18배로 국제 수준에 근접했다.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일본 증시의 결점으로 지적됐던 금융기관과 상장사간 상호 주식보유도 크게 줄었다.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 일본증시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3일 “기업의 혁신 노력이 주식보유의 구조 변화와 맞물려 주가를 끌어올리는 구도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일본 증시는 최근 2년 반 새 2.3배 올라 단기적으로 과열 조짐도 보이고 있다. 미국 경기와 금리인상, 유럽 경제 문제 등 증시 불안 요인도 많다. 일본 증시가 2만 엔을 넘어 어디까지 오를지 주목된다.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