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에 신뢰 쌓아야

"42년 만에 개정된 韓美원자력협정
핵연료 재활용 연구에 중요한 전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모델 제시를"

임만성 < KAIST 교수·원자력공학 >
세계적으로 원전(原電) 개발의 역사를 보면 1950년대 제1세대 원전이 개발된 이후 안전성과 경제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계속돼 왔다. 한국은 전적으로 외국에 의존해 원전개발을 시작한 후발국이었지만 지금은 국산기술로 제3세대 원전을 수출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국가가 됐다. 경제성, 안전성 및 핵비확산성이 더욱 개선된 제4세대 원전의 국제적 개발에도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운영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해서 아직 국가적인 장기 정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한·미원자력협정 개정내용을 보면 미국이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관리문제 해결을 위해 재활용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지금까지 동의해 주지 않던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의 가능성을 열어 줘 주목된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수립에 상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핵연료주기를 포함한 차세대 원자력시스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중요한 기틀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그동안 한국은 취약한 국가에너지안보 상황에 대처하면서 국가 경제개발의 구동력으로서 원자력에 크게 의존해왔다. 그러나 미래 국가 에너지안보를 확보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미국이 한국에 일방적으로 통제권을 행사하던 구(舊)협정 체제에서는 이런 연구개발이 크게 제약을 받았는데 새로운 협정은 양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임을 인식하고 장기적으로 예측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초하에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제 미국은 단일화된 통제기준을 고집하지 않고 단계적이지만 검증된 기술력과 신뢰에 근거해 원자력협력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새롭게 마련된 협력 패러다임 하에서 한·미 양국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증진 및 세계 핵비확산 확보라는 공동 비전을 갖고 양국의 공동 이익을 위해 전략적 파트너 관계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먼저 원자력 분야, 특히 핵연료주기 분야의 양국간 신뢰를 더욱 증진시켜야 한다. 이번 협정 개정으로 양국간 신뢰가 어느 정도 깊어졌다고 할 수는 있으나 아직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에 대한 완전한 동의가 확보된 것은 아니다. 우선 한국은 국제적으로 국가핵비확산 신뢰성을 더욱 강화해나가야 하며 이번 협정 개정으로 설립될 양국간 고위급위원회가 양국 신뢰 증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2011년부터 10년간 수행하는 한·미 핵연료주기 공동연구는 기술적 측면에서 양국간 신뢰를 증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므로 좋은 성과를 거두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다음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원자력은 동북아 3국 가운데 특별히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다. 이제 한국은 원전 수출국으로서 국제적으로 원자력 산업계를 선도하고 세계 원자력 거버넌스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책임자의 위치에 도달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부상으로 현재까지 미국 주도로 이루어진 세계 원자력 안전 및 비확산체제의 변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시점이다. 세계적으로 안전하고 책임있는 원자력을 실현하기 위해서 한·미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번 협정개정으로 한국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미래지향적 모델을 제시하면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후속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임만성 < KAIST 교수·원자력공학 msyim@ka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