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잠자던 바둑천재'가 깨어났다…김지석 9단 "집착 덜어내니 수가 보이네요"

게으른 천재서 반상의 황태자로 김지석 9단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김지석 9단이 이전에 치른 경기를 복기(復棋)하고 있다. 김 9단은 “복기를 통해 패배의 아픔을 덜어낸다”고 말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한국바둑의 거목(巨木)’ 조훈현 9단은 꼬마 김지석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다. 자신과 같은 유형의 ‘천재’임을 확신한 조 9단은 김지석을 이창호 9단에 이어 두 번째 내제자(內弟子·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생활하며 가르치는 제자)로 받아들였다. 김지석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김지석은 이창호에 이어 세계적인 기사(棋士)가 탄생할 것이라는 바둑계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열흘 만에 스승의 집에서 나오게 됐다.

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는 조 9단의 부인 정미화 씨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이렇게 전했다. “이창호는 7년간 같이 사는 동안 발걸음 소리 한번 내지 않았는데 김지석은 온갖 장난을 치며 뛰어다녔대요. 혼이 나갈 것 같았다는 거예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포기하자고 정씨가 남편을 설득했답니다.” 김지석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때 조 국수님 댁에는 게임기 등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형, 누나들이 같이 잘 놀아주기도 했고요. 바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그렇게 놀기 좋아하고 장난기 많은 아이였지만 바둑 재능은 어디 가지 않았다. 김지석은 2003년 14세 때 프로에 입단했다. 하지만 천재는 타고 나도 대기(大器)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김지석은 입단 후 5년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6년차이던 2009년 물가정보배 결승에서 이창호 9단을 꺾고 첫 국내 기전 타이틀을 안았지만 다시 오랜 슬럼프가 찾아왔다.

‘게으른 천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김지석은 지난해 12월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에서 중국의 탕웨이싱 9단을 꺾고 세계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세계대회에서만 16승1패의 성적을 거뒀다. 그의 나이 25세. 20~22세에 최절정기를 맞는 대부분의 프로기사들에 비해 늦게 만개했지만 김지석은 마침내 한국 바둑계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서울 홍익동 바둑기원에서 김지석 9단을 만났다. 그는 바둑보다 뛰어노는 것이 좋았던 꼬마 시절부터 패배의 시련을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의 바둑 인생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승부욕 깨운 라이벌

김 9단은 프로 입단 이후 오랜 정체기를 겪었다. “잘 풀렸다가 푹 가라앉고, 다시 불처럼 타올랐다가 또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했다. 첫 번째 변곡점은 2009년이다. ‘잠자던’ 김 9단을 깨운 것은 최철한 9단, 강동윤 9단, 박정환 9단 등 같은 세대 라이벌들이었다. 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고받으면서 승부욕이 강하게 일었다.

“그해 어느 대회 예선전에서 대진표를 보니 최철한 9단과 같은 조였어요. 최 9단만 이기면 어떻게든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전까진 시합에 져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정말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그때 들었습니다. 지기 싫었어요. 그 뒤로 정말 열심히 바둑을 뒀어요. 최 9단뿐 아니라 이세돌 9단, 이창호 9단 등을 보면서 바둑 기술뿐 아니라 삶의 태도를 많이 배웠습니다.”이세돌 9단은 김 9단의 재능을 무척 아꼈다. 자주 연구실에 들러 김 9단과 연습 대국을 했다. 이를 악문 김 9단의 한국랭킹은 2009년 8위까지 치솟았다. 한국대표로 세계무대에도 나갔다. 바둑계에선 이때부터 김 9단의 재능이 꽃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웬일인지 또 주춤했다. 슬럼프로 이끈 건 역설적이게도 그의 라이벌들이었다.

“패배를 받아들이기가 점점 더 힘들었어요. 다른 기사들도 그렇겠지만 어릴 때부터 잘한다는 얘기만 들었고, 이길 때가 더 많았기 때문에 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특히 저보다 어린 친구에게 졌을 때는 자책감이 더 컸어요. 박정환 9단에게 그해 천원전 결승에서 0-3으로 영패를 당했을 때는 그야말로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어서 한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았죠.”

“상대의 노력도 인정해야”김 9단이 다시 부활한 것은 2013년이다. GS칼텍스배 결승에서 이세돌 9단을 3-0으로 완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랭킹도 3위까지 올랐다. 그는 지난해 절정기를 누렸다. GS칼텍스배에서 2년 연속 우승했고 세계대회에서도 연전연승하다 삼성화재배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었다. ‘2014 바둑대상’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그는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한 날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날”이라며 “세계 무대에서 약하다는 콤플렉스에서도 벗어났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둑을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엔 바둑 한판 둘 때 마음이 수도 없이 바뀌었어요.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죠. 흐름이 괜찮으면 다 이긴 것처럼 들뜨기도 했고요. 그렇게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다가 문득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한판의 바둑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어차피 제 뜻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집착을 덜었어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좋은 내용을 보여주려 최선을 다하고, 그래서 이기기까지 하면 다행인 거죠. 바둑도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경기에서 진 뒤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그는 “일단 복기를 하고 왜 졌는지 알면 반은 풀린다”며 “이후 내가 노력한 만큼 상대도 노력했다는 것을 인정하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과 유도가 바둑에 도움

김 9단은 2012년 서울대 약학대학원을 졸업한 세 살 연상의 재원과 결혼해 화제가 됐다. “결혼 전에 아내의 친구가 팬이라며 저를 만나보고 싶어했어요. 아내가 어렸을 때 바둑을 배웠기 때문에 셋이 보기로 했죠. 그런데 막상 자리에 나갔더니 그 친구는 보이지 않는 거예요. 일이 생겨서 못 온 거였어요. 첫 만남부터 아내가 마음에 들어서 몇 번 만나다가 사귀자고 고백했어요.”

결혼 후 그는 심리적으로 안정됐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는 “가장이 됐으니 전에는 바둑을 못해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생계와 직결된다”며 웃었다.

“어떨 땐 아내가 저보다 더 ‘승부사’ 같아요. 제가 대국에서 이기든 지든 전혀 내색하지 않아요.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워져도 다 이해해줍니다. 결혼한 뒤 많은 경험을 했고 바둑을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아이를 갖게 되면 바둑을 보는 눈이 또 달라지지 않을까요?”

김 9단은 앳된 외모와 달리 몸이 다부지다. 유도로 다져진 탄탄한 등근육을 자랑한다. 바둑에도 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꾸준히 운동을 한다.

“유도도 1 대 1로 승부를 가린다는 점에서 바둑과 비슷해요. 제가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밀고 당기고 하는 것도 비슷하고요. 체력적·정신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유도도 바둑처럼 힘 빼는 방법을 알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요.”김 9단은 어느새 바둑 인생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15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선 GS칼텍스(Kixx)팀의 주장 완장을 찼다. 하지만 그는 아직 자신의 바둑 인생을 ‘초반전’이라고 한다. “앞으로 10년간은 승부에만 전념해보고 싶습니다. 남은 인생은 그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죠.”

최만수/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