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이공 함락 40년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미스 사이공’은 베트남 종전 직전 미군 병사 크리스와 베트남 여인 킴의 사랑을 다룬 뮤지컬이다. 크리스는 귀국하고 킴은 크리스의 아들을 기르면서 그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비극적 내용이다. 결국 아들만 미국으로 떠나고 자신은 자살하는 것으로 극은 끝난다. 이 작품은 아직도 미국 브로드웨이와 런던의 웨스트엔드를 달구고 있다. 이 뮤지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장면은 사이공을 탈출할 때 전개되는 아비규환이다.

사이공 함락은 큰 저항없이 이뤄졌다. 두옹반민 정부가 1975년 4월30일 아무런 조건 없이 항복을 선언하자 불과 두 시간 만인 오전 11시30분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깃발을 꽂은 324호 탱크가 대통령 관저의 철문을 부수고 들어섰다. 이로써 20년간 끝을 모른 채 지속됐던 베트남전쟁은 막을 내렸다. 1964년 참전한 미국은 이 전쟁에서 5만8220명을 잃었다. 부상자도 15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 이듬해 파병한 한국도 5000명의 전사자를 냈다. 물론 베트남은 남북 합쳐 300만명 이상 사망했다.하지만 지금 베트남은 이 전쟁을 다시 곱씹으려 하지 않고 있다. 그저 과거를 잊고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한다. 오히려 전쟁 중 지원을 받은 중국과는 남중국해 섬들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마당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적극 참가를 모색하고 있다. 베트남 인구(9300만명) 중 60% 이상이 전후 출생자다. 지난달 30일 열린 베트남전쟁 종결 40주년 기념식에서도 구엔단둥 총리는 종전 후 40년간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 등을 주로 평가했다. 전쟁의 광기를 드러냈던 이념은 물론 온데간데없다.

무엇보다 한·베트남 관계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지난해 베트남의 직접투자유치액 202억달러 가운데 36%를 한국 기업에서 투자했다. 투자 국별 순위 1위다. 올해도 여전히 투자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베트남행 비행기가 하루 20편 이상이라는 점도 양국간 관계를 말해준다. 베트남은 흔히 ‘한국을 비추는 거울’로 통한다. 한국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베트남에서 찾는다. 베트남 노동자들에서 한국인의 1970년대가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전투병이든 군속이든 한국 남성들은 많은 여인을 울리고 떠나왔다. 수많은 킴과의 사이에 태어난 ‘라이따이한’이 적어도 1500명에서 많게는 1만명으로 추산된다. 아직 한국은 그들을 보듬지 못하고 있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