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면세점, 나눠먹기식 사업자 선정은 안돼
입력
수정
지면A33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과 육성 전략
지난해 8조3000억원으로 4년 사이 두 배 커진 시장
서울시내 대기업 2 + 중기 1 사업권 놓고 합종연횡
위치·품목·서비스 수준 등서 쇼핑 매력도 높여야
"면세점을 특혜사업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실력 있는 사업자를 길러내야 한다"
안승호 < 숭실대 경영대학원장 >
![](https://img.hankyung.com/photo/201505/AA.9983797.1.jpg)
해외 유명 면세점업체를 인수하려던 롯데도 국내 면세사업 확대로 노선을 변경했다. 현대백화점, 한화갤러리아, SK네트웍스, 한국패션협회 등도 출사표를 냈다. 결판은 오는 7월에 난다.그런데 모든 사람이 ‘황금알’에 정신이 팔려 ‘거위를 잡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세점사업은 지속적으로 각광받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면세점사업이 왜 필요한가란 질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두 가지 답변이 나올 수 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1505/AA.9984302.1.jpg)
국내 유통시스템 경쟁력 강화를면세점에서 취급하는 품목을 정상적인 국내 소매점에서도 같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면 해외 쇼핑 규모는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국 면세점 이용 규모는 해당 국가 유통시스템의 효율성과 반비례한다. 이는 한국 방문 시 미국 여행자의 국내 쇼핑 규모가 작은 이유,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면세점 쇼핑에 열을 내는 이유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
결국 면세점을 포함한 국내 유통시스템의 경쟁력 강화가 내국인의 해외 면세점 구매를 줄이고 요우커의 국내 쇼핑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길이다. 규제 완화와 경쟁 활성화를 통해 면세점과 정상 유통채널이 상호 경쟁하는 상태가 돼야 한다.
면세점 필요성의 두 번째 근거는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의 씀씀이를 늘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요우커의 면세점 쇼핑은 잘 알려져 있다. 요우커는 1인당 쇼핑지출액이 1431달러로 미국인(344달러)이나 일본인(340달러) 관광객의 네 배가 넘는 ‘큰손’이다. 이들 요우커 10명 중 6명(61%)이 시내면세점을 찾는다고 한다.그런데 면세점 최대 고객인 요우커들이 충성도를 보이는 대상은 국가, 지역, 점포가 아닌 ‘국제 명품브랜드’에 있다는 점에서 국내 면세점업계의 한계가 드러난다. 한국만의 쇼핑 환경이란 특장점 없이 명품 브랜드의 종류와 가격만 내세우는 전략이 대세를 이룬 결과다. 그러다보니 다른 나라 면세점이 더 저렴한 명품 구입 기회를 제공하면 요우커들은 언제든지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최근 일본 엔화의 약세나 중국 내 면세점사업 확대에 따라 한국 방문의 성장세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가 이를 반증한다.
규모의 경제 살릴 수 있도록 해야
국내 면세점 사업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매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명품 구매의 최적지로서 한국이 부각돼야 한다. 쇼핑의 편리성이 핵심 요소다. 인천공항 면세품 인도장의 혼잡함이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부가가치세 환불서비스의 불편은 쇼핑 최적지로서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치명적인 결점이다.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도 필요하다. 나눠먹기 식으로 면세점 사업자가 너무 많이 지정돼 해외 명품브랜드 업체와의 협상력이 약화되거나 인천공항의 높은 임차료 부과로 면세점 운영 비용이 크게 늘 수 있다.
한국 면세점이 세계 1위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중국, 대만, 일본, 아랍에미리트 등의 반격이 심상치 않다. 이들은 각기 세계 최대 시장, 문화적 근접성, 탄탄한 제조업 기반, 세계 최고급 등을 내세우며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면세점은 해외 명품을 저가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 외에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다. 가격 경쟁력을 포함해 쇼핑 장소로서의 다양한 매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브랜드, 먹거리, 즐길거리의 다양성이 특정 쇼핑가의 매력을 높이듯이 면세점의 위치, 점포 성격, 취급 품목, 서비스 수준 등에 다양성을 키워 쇼핑 적지로서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최근 다양성을 늘리기는커녕 줄이는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모든 면세점이 중소기업 제품을 일정 부분 이상 취급해야 한다는 정책은 면세점 운영을 동질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우수 중소기업 제품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않다.
5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면세점사업권 제도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점포를 차별화하는 것을 방해하는 악성 규제다. 인천공항 면세점의 높은 임차료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롯데의 경우 5년간 연 7000억원대의 임차료를 내야 한다. 막대한 투자 규모를 생각한다면 사업권 갱신 기간을 늘리는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거위' 죽이는 규제 없애야
시내 면세점의 특색 없는 운영도 그렇다. 이는 고질적인 쇼핑 리베이트 문제로 이어진다. 차별점이 없는 면세점들이 가이드 등의 영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나타나는 결과다. 일부에서는 쇼핑 리베이트를 규제하자고 나서는데 이는 문제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다.
면세점사업을 ‘관세와 관련된 특혜사업’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면세점사업은 한국 관광 인프라의 한 가지 중요한 요소다. 관광객을 유치하고 다른 분야에서 부가 수익 기회를 창출하며 정상 유통채널과의 경쟁을 통해 한국의 유통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안이 돼야 한다.중국은 하이난섬에 세계 최대 면세점을 조성해 해외 면세점을 찾는 자국민 수요를 잡겠다고 나섰고, 일본도 면세점 확대에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혜를 나눌 대상을 찾을 것이 아니라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실력 있는 사업자를 길러내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안승호 < 숭실대 경영대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