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대기업 취업·은행 대출도 뚫는다"…'가짜 서류'의 유혹

활개 치는 서류 위조범…재직증명서·급여명세서 만들어
백수를 직장인으로 둔갑…대출금 30~40% 수수료 챙겨

작년 위·변조 검거 인원 2만명…"의뢰인도 처벌…경계해야"
29일 한 남성이 졸업증명서를 위조해준다는 서류 위조업자의 광고 글을 살펴보고 있다. 서류 위조범들은 중국 사이트와 미국 이메일 계정 등을 이용해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인천에 사는 이모씨(29)는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자 문서 위조에 나섰다.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만큼 잘만 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씨는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에 ‘졸업장·등본·토익 토플 성적표 위조’ 등의 광고 글을 올리며 ‘영업’을 시작했다.

많은 의뢰가 밀려들었다. 일을 시작한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 구속되기까지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재직증명서부터 가족관계증명서 등 80장의 가짜 서류를 만들었다. 단가는 장당 30만~50만원을 받아 약 2500만원을 벌었다.가짜 졸업증명서로 모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한 의뢰인도 있었고, 위조된 병원 진단서로 예비군 훈련을 연기한 이도 있었다. 이씨의 위조 문서는 상당히 정교해 대기업 계열사 인사담당자는 물론 늘 공문서를 다루는 주민센터 공무원까지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그는 서울 종암경찰서의 이정찬 경위에게 덜미가 잡혔다. 민간 정보원을 통해 관련 사실을 전해들은 이 경위가 위조 서류 거래 장소에 잠복하고 있다가 이씨를 긴급체포한 것이다.

사기 대출에 이용되는 서류 위조
서류 위조 전문가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형사사법포털 KICS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문서 위·변조로 검거된 이들은 2만1928명에 달했다. 2012년과 2013년에도 각각 2만1846명, 2만3267명으로 3년 연속 2만명을 웃돌았다.

특히 최근에는 대출사기단이 위조 서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은행 신용대출을 받기 어려운 이들에게 허위 재직증명서와 급여통장 거래내역서 등을 만들어줘 대출을 받게 한 뒤 대출금의 30~40%를 수수료 명목으로 떼는 방식이다.지난달 종암경찰서에 잡힌 대출사기단 총책 홍모씨(29)가 대표적인 예다. 홍씨는 페이스북에 “무직자나 담보가 없는 사람도 대출이 된다”는 광고 글을 올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대출을 받지 못하는 20대 전후 젊은이들을 모집했다.

홍씨는 일부 저축은행이 서류심사와 전화통화만으로 대출을 해준다는 점을 악용해 모두 7900만원을 대출받아 2580만원을 수수료로 챙겼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검거된 정모씨(26) 등 12명도 같은 수법으로 대출금 전액을 가로채 4억원을 편취했다. 정씨도 과거 서류 위조를 통한 대출사기단에 속아 대출금 전액을 빼앗긴 뒤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는데, 이후 관련 기술을 배워 다른 또래 젊은이들을 상대로 범행을 시작했다.위조범과 의뢰자 모두 처벌 대상

지금도 서류 위조범들은 온라인 상에서 쉽게 접촉할 수 있다. 기자가 검색엔진 구글에 “증명서 만들어드립니다”를 검색했더니 “당일 진행, 당일 발송” “직거래니 안심하세요. 돈만 받고 잠적하는 사기꾼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등의 광고 글이 줄줄이 나타났다.

서류 위조범들은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미국에 본사를 둔 핫메일이나 야후의 이메일 계정을 이용한다. 야후 계정을 사용하는 한 업자에게 이메일로 어학시험 성적표 제작 절차와 비용 등을 문의하자 한 시간도 안돼 답장이 왔다. 위조 서류에 담길 인적사항을 보내주면 즉시 제작해 인쇄본을 사진 찍어 보내주겠다고 했다. “40만원을 입금하면 제작한 서류 원본파일을 보내주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경찰은 서류 위조범은 물론 위조를 의뢰한 사람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김자한 종암경찰서 지능팀장은 “위조는 다른 사람이 했으니 의뢰인은 처벌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역시 위조문서 사용 등의 죄목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위조 서류를 이용한 대출이 기승을 부리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전과자로 전락하고 있다”며 “은행도 대출 심사를 할 때 대출자를 만나서 검증하고 의심스러운 문서는 발행처에 직접 확인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