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백영심 간호사, 25년 의료봉사 '말라위 나이팅게일'…"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 게 내 행복"
입력
수정
지면A19
'호암상 사회봉사상' 받는 백영심 간호사한 살배기 아기가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보며 펑펑 울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며칠간 잠을 설쳤다. 막막했다. 의료봉사를 위해 찾아간 아프리카 케냐에는 그렇게 진료를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두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조금만 더 일찍 진료를 받았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결심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데 평생을 걸겠다고. 적어도 형편이 어려워 진료 한 번 못 받고 죽게 내버려두진 않겠다고 말이다. 올해 ‘호암상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결정된 백영심 간호사(53·사진)의 얘기다.
“사회 곳곳에서 이름을 알리지 않고 봉사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큰 상을 받아서 어쩌지요.”25년 전부터 지구 반 바퀴 너머 아프리카 케냐 말라위 등지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백씨는 수상을 축하한다는 인사에 이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작고 가냘픈 체구로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살렸을까 싶다가도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나는 깊은 의지에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백씨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며 “내 손으로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꿈을 이룬 것만으로도 매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제주 시골소녀, 나이팅게일 되다
백씨가 간호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79년 대학 진학을 앞둔 18세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여덟 살 많은 언니가 “영심아, 간호사가 되어보지 않을래?” 하고 권유하면서다. 제주 함덕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백씨는 평소 ‘내가 크면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간호사는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직업이었다.“단순히 아플 때 주사 놔주는 역할을 하려는 게 아니었어요. 가난한 사람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아픈 삶을 간호해주고 싶었어요.”
1984년 제주 한라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까지 6년간 고려대 부속병원 간호사로 일하다 돌연 아프리카 의료봉사를 떠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국에는 아픈 환자들이 찾아갈 병원이라도 있지만 의료 여건이 극도로 취약한 아프리카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0.02명에 불과하단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 의료봉사를 목표로 잡고 틈틈이 외국어 공부를 했다. 능숙하진 않아도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만 준비하고 사직서를 냈다. 안정된 일터를 버리고 어딜 가느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당시 백씨의 나이는 28세였다.처음 4년간은 케냐에서 일했다. 1993년에 케냐보다 의료환경이 더 열악한 말라위로 옮겼다. 전기도 물도 없었다. 백씨는 주민과 함께 우물을 파고 벽돌을 지고 지붕을 이어가며 간이진료소를 세웠다. 그는 “햇빛과 바람을 간신히 피하는 정도였지만 간이진료소가 생기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며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를 혼자 돌봤다”고 회상했다. 백씨는 저녁 때마다 틈틈이 시간을 쪼개 구급상자를 들고 진료소로 오기 어려운 환자들을 찾아다녔다. 자연스레 ‘말라위의 나이팅게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고비의 순간, 찾아온 도움
하지만 곧 한계가 찾아왔다. 전문 의료 인력은커녕 약품도 부족한 상태에서 치료가 잘될 리 만무했다. 한 달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 약품을 사도 모자랐다. 미숙아를 돌볼 인큐베이터 하나가 없어 보온병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절실했지만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일이라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날이 갈수록 막막했어요.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일이었어요. 나을 수 있는 환자조차 의료시설이나 약품이 없어서 죽는 것을 볼 때면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이때 한국의 한 독지가가 백씨의 의료봉사 얘기를 입소문을 통해 듣고 “도와주고 싶다”며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이 도움 덕분에 마침내 2008년 말라위 수도 릴롱궤 외곽에 180병상 규모의 대양누가병원을 세울 수 있었다. 그토록 원했던 최신 시설의 현대식 병원이 지어진 순간이었다. 백씨는 병원 설립을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백씨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분이 있어서 큰 힘을 얻었다”며 “비로소 아픈 사람들을 간호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병원을 세운 뒤부터는 일이 술술 풀렸다. 세계에서 의료봉사진이 병원 운영에 도움을 주러 나섰고 이제는 연간 20여만명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성장했다. 이곳에서 태어나는 생명도 매년 1000여명에 달한다.
백씨는 “요즘도 병원에서 치료받고 건강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며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갑상샘암 이겨내고 의료보건 인력 양성까지
이제 괜찮겠다 싶은 순간,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2010년 갑상샘암 진단을 받은 것. 그는 “너무 바빠서 쓰러질 것 같아도 ‘이쯤은 괜찮겠지’ 하고 정작 내 몸 건강에 소홀했던 것 같다”며 “다행히도 2011년 말 수술하고 나서 괜찮아졌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아무리 바빠도 건강관리는 챙기면서 일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건강한 몸뚱이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프면 큰일이라며 손을 내젓기도 했다.
백씨는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현지 의료보건 인력을 양성하는 데도 팔을 걷어붙였다. 2010년 간호대학을 설립한 데 이어 요즘은 의과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 당장 의료기반을 구축한 데 만족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앞으로 현지인들이 스스로 지속가능한 변화와 발전을 하려면 의료보건 인력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이뿐만 아니라 2012년엔 말라위에 정보통신기술(ICT)대학을 설립하는 등 현지인 교육 환경을 구축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백씨는 “가난에서 벗어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지인들이 가난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스터 백’으로 사는 지금이 행복
이런 공로로 백씨는 2013년 10월 간호사 최고 영예인 나이팅게일 메달을 받았다. 나이팅게일 메달은 국제적십자위원회가 헌신적인 간호사였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기려 제정한 상이다. 오는 1일에는 ‘한국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호암상 사회봉사상의 영예를 안는다. 그는 상금 3억원도 의료시설 투자에 쓰겠다고 밝혔다.
“사람 살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특히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돕는 일에 인생 전부를 걸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요.”
백씨는 어려운 생명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타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느라 혼기를 놓쳐 남편이나 자식은 없지만 그에겐 ‘희망’을 나눈 제2의 가족이 있다고 했다. 가끔 몸이 아픈 날이 있어도 외롭지 않다. 백씨가 아플 때면 현지 이웃들이 찾아와 병간호를 해주기 때문이다. 치료해줘서 고맙다며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만 내놓는다는 닭요리를 선물하는 이도 많다.
현지인들은 백씨를 ‘시스터 백’이라고 부른다. 원래대로라면 ‘마담 백’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만 “나는 여러분의 친구고 형제자매 같은 사람이니 언니로 불러달라”는 백씨의 요청 때문이다. 백씨는 “‘시스터 백’으로 불리며 살아가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사람을 살리는 데 온힘을 쏟으며 살아가겠다”며 활짝 웃었다.
■ 호암상 어떤 賞인가
故 이병철 회장 사회공익 정신 기리는 ‘한국의 노벨상’
호암상은 상금과 권위 역사 등에서 한국 최고 수준으로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매년 학술, 예술, 사회 발전,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쌓은 인물을 선정해 포상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0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사회공익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해 올해로 25회째다. 수상자들의 업적을 널리 알려 사회 발전에 기여하도록 돕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이 선대회장의 호를 따서 상 이름을 지었고, 삼성의 4대 공익재단 중 하나인 호암재단이 주관한다.
호암상은 과학상, 공학상, 의학상, 예술상, 사회봉사상 등 5개 부문으로 나뉜다. 국적에 관계없이 국내외 한국인과 한국계 인사가 수상 대상이다. 단 사회봉사상은 한국인을 위해 활동한 외국인까지 포함한다. 수상자는 각 분야의 권위 있는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약 5개월간 꼼꼼한 심사와 현장실사를 거쳐 선정한다. 올해엔 노벨상 수상자 2명을 비롯한 해외 석학 4명이 심사위원회에 참여해 후보자 업적의 국제성을 더욱 철저히 점검했다고 재단 측은 설명했다.
매년 시상하는 5개 부문상 외에 특별상도 있다. 특별상은 매년 시상하지는 않고 국적을 초월해 문화와 사회 발전에 공헌한 인사에게 수여한다. 노벨상을 운영하는 노벨재단이 2010년 호암상 특별상을 받았다. 올해 수상하는 5명을 포함해 현재까지 127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고 박완서 작가, 임권택 감독, 정명훈 지휘자 등도 이 상을 받았다.올해 호암상 수상자는 과학상에 천진우 연세대 교수, 의학상 김성훈 서울대 교수, 공학상 김창진 UCLA 교수, 예술상 김수자 현대미술작가, 사회봉사상에 백영심 간호사가 선정됐다. 수상자는 부문별 상금 3억원과 함께 순금 50돈으로 만든 메달(사진)을 받는다. 메달 앞면에는 이 선대회장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수상자들이 청소년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릴레이 강연도 한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