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활성화, 일본 통화정책을 주목하라

"재정확대로 수요부족 대처했던 日
양적완화로 내수증대, 엔低 유도
新성장산업 육성책도 눈여겨봐야"

이종윤 <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가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 일본 경제는 왜 침체에 빠졌으며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할 정도로 침체가 오래갔을까.

일본에서는 ‘엔고(高)불황’이란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엔고가 불황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로 인식돼 왔다. 그럼 엔고는 왜 지속됐을까. 거대한 경상수지 흑자에 기인했다. 일본 기업의 탄탄한 국제경쟁력으로 인해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면 엔고가 초래되며, 엔고가 되면 일본 경제와 기업들은 합리화 노력을 통해 엔고를 극복했다. 그래서 엔고를 극복하는 시점이 되면 오히려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더 커지고 다시 엔고를 되풀이한 것이다.일본 기업의 엔고 극복노력은 공급부문의 능률화를 통한 공급능력의 증대와 노동생산성 상승을 시현하는 한편 기업 내부의 불요불급한 경영자원을 축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공급능력에 비해 내수를 위축시켜 구조적 불황상태를 정착시켰다고 할 수 있다. 지속적인 엔고는 내수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기업을 해외로 내보내는 효과도 발생시켰다. 1985년의 플라자합의에 의해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일거에 40~50%나 절상되고, 이 상황을 극복하는 1990년대 초에는 구조적 불황이 정착했다. 이 시점에선 개별 산업의 평균적 공급능력이 국내 수요의 30% 정도를 초과, 시설과잉과 인력과잉에 더해 차입과잉 상태가 됨으로써 한계기업이 속출했다.

일본 정책당국은 국채를 발행해 수요부족에 대처했다. 국채를 대량 발행해 확보한 재원으로 토목공사를 일으켜 건설경기를 부양함으로써 경기침체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런 방식은 그때그때의 수요부족을 메워줘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지속하기 어렵다. 또 엔고로 인해 기업은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게 되므로 일정 시점이 지나면 다시 ‘수급 갭(gab)’이 크게 발생하고 다시 불황극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를 초래하는 것이다.

일본 경제로서는 건설산업이 비교열위산업에 속해 지속적인 수요창출로 이어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건설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철강과 기계산업 등도 엔고에 따라 끊임없이 구조조정에 몰렸다. 결국 적자공채 발행에 의한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을 수 없게 돼 국가부채가 크게 쌓인 것이다.일본의 불황극복 방식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일시적으로는 긍정적인 정책효과가 발생해도 과중한 국가부채 부담 때문에 그 효과가 정상적으로 나타날 때까지 지속시키지 못한 채 바로 긴축정책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게 됨에 따라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경기활성화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본 경제의 장기적 침체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 상태가 지속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정권은 재정지출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통화확대 정책으로 선회했다. 즉, 대폭적인 통화증발을 통해 내수를 살리는 동시에 큰 폭의 엔화가치 하락을 유도했는데, 이는 더 이상 무리하게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에서도 토목공사형 부양책은 지양하고 의료와 환경산업 지출증대, 다양한 형태의 경제특구 건설 및 해외 고급인재 활용 등에서 보는 것처럼 성장산업 육성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함께 양적 완화 정책을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본 경제가 완전히 성장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속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종윤 <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leejy@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