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지 전염병 전문 편집장 "휴교까진 필요없는데 메르스에 과민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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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감염 차단에 도움안돼지난달 한국에서 첫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뒤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대학 2200여곳이 휴업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단체행사는 물론이고 민방위 교육까지 줄줄이 연기됐다. 국제적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의 편집장 눈에 한국의 이런 모습은 무척 의아하게 비쳤다.
"감염병 보도땐 공포·패닉 등 자극적 용어 쓰지 말아야"
12년간 감염병 전문기자로 일한 마르틴 엔서린크 사이언스지 유럽총괄 편집장은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메르스는 공기로 감염될 가능성이 없는데도 한국에선 학교 휴업 조치가 이뤄지고 길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많다”며 “메르스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이날부터 나흘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세계과학기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엔서린크 편집장은 “한국에선 과장된 보도로 공포가 조성돼 있는 듯하다”며 “공포는 전염병에 대응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공개한 것에 대해선 “관련 병원 정보는 처음부터 공개하는 게 옳았다”며 “병원 명단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정보는 정확하게 전달해야 뜬소문이 사그라진다”고 설명했다.
엔서린크 편집장은 전문기자로서 감염병 보도의 네 가지 원칙을 소개했다. 첫째 전문가 검증을 거쳐 정확한 내용만 보도할 것, 둘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물론 정부 발표조차도 의심할 것, 셋째 공포를 조장하지 말 것, 넷째 소문이나 민간요법 등은 보도하지 말 것 등이다.
그는 감염병에 대한 정확한 보도를 위해선 “기사를 내보내기 전 과학자 의사 등 전문가의 검증을 거치라”고 조언했다. 이어 “감염병에는 불확실한 정보와 소문이 따라다니기 마련”이라며 “모든 사실은 의심을 갖고 확인한 뒤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사회 내 공포를 부추기지 않기 위한 보도원칙도 제시했다. 그는 “기사에서 현실을 묘사할 때 공포 패닉 등 극단적인 단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며 “독자가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되 실제 상황보다 과장하거나 추측해서 보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나 민간요법을 보도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3월 나이지리아에서 에볼라가 유행하자 한 언론이 소금물을 마시면 예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며 “이에 두 명이 소금물을 마시다 탈수증세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SNS와 전염병 공포 확산의 관계에 대해선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SNS의 등장 이후 소문이나 민간요법이 더 빠르게 퍼지고 있다”면서도 “올바른 정보도 그만큼 빨리 퍼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SNS를 적극 활용해 근거 없는 공포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