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0,000,000,000,000을 1弗로 교환…초인플레 짐바브웨, 자국화폐 사용 포기

역대 최악 인플레는 2차대전 직후의 헝가리
한달새 물가 4190조% 올라
아프리카의 짐바브웨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국 화폐 사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란 물가상승률이 월 50%를 넘으면서 통화당국의 통제상황을 벗어나는 상태를 뜻한다.

짐바브웨 중앙은행이 오는 15일(현지시간)부터 자국 화폐인 짐브바웨달러 사용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블룸버그통신 등이 12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15일부터 9월 말까지 17경5000조 짐바브웨달러를 미화 5달러로 바꿔주기로 했다. 두 화폐를 3경5000조 대(對) 1이라는 기록적인 비율로 교환하기로 한 것이다. 예금자의 은행 잔액도 이 같은 비율로 미 달러화로 전환하기로 했다. 다만 복수통화제 도입이 결정된 2009년 이전 발행된 자국 화폐에 대해서는 1 대 2경5000조의 교환비율을 적용하기로 했다.짐바브웨는 2008년 경제위기로 하루에 물가가 배 이상 뛰는 살인적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뒤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2009년부터 미 달러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 등 세 가지 화폐를 같이 사용해왔다. 블룸버그는 짐바브웨 정부가 6년간 운영해온 복수통화제도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짐바브웨 정부가 더 이상 쓸모없어진 자국 통화를 버렸다고 평가했다.

짐바브웨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2000년 외국인의 토지를 몰수하고 외부 원조를 거부하는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경제가 어려워지자 재정지출을 유지하기 위해 2006년 엄청난 규모의 돈을 찍어내면서 시작됐다. 그 결과 2008년 정부가 공식 발표한 물가상승률이 2억3100만%에 달할 정도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당시 실제 물가상승률이 4억%가 넘는다고 전했다. 짐바브웨 국민은 생필품을 사기 위해 비닐백에 화폐를 수북이 담아 들고 다녀야 했다. 2009년 짐바브웨는 화폐의 액면가치를 10분의 1로 줄이는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액면가 최고 화폐단위가 100조달러(사진)였고, 이는 버스요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은 1921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겪었던 2억%를 능가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바이마르공화국은 전쟁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통화를 발행했고, 1921년 1월 0.3마르크였던 신문 한 부 값은 1922년 11월 7000만마르크까지 치솟았다.

역대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은 국가는 헝가리로, 2차대전 직후인 1946년 7월 한 달에만 물가가 4190조% 치솟았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국가도 198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정책으로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외채위기를 겪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