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골든타임보다 중요한 것

박기호 선임기자·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선 행보에 다시 나서고 있다. 노동계 저지로 무산됐지만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8일 준비했던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나 노사정위원회가 지난 3일 개최한 ‘노동시장 구조개선 토론회’ 등을 통해서다. 박근혜 대통령도 노사정 대화 재개를 당부했다. 지난 4월 노동계 반발로 대타협이 결렬된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노동시장 개혁 논의도 새로운 전기를 맞는 분위기다.

패키지딜의 한계그동안의 노사정위 대타협 시도는 120여개에 이르는 각종 노동 현안을 패키지로 처리하는 것이었다. 모든 노동 현안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식으로 딜하는 방식이다. 패키지딜의 배경에는 골든타임 전략도 있었다. 2016년 총선 일정을 감안할 때 반발이 적지 않은 구조개선 과제들을 법제화하려면 올 상반기 대타협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패키지 처리가 효과적이라는 점에서다.

노사정 대타협은 “결렬이 아니라 7, 8부 능선을 넘어 휴전 중”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물 건너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노동계가 노사정위를 뛰쳐나온 배경을 보면 분명해진다. 노사정위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사회안전망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빅딜하는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노동계는 시장 개혁으로 생길 수 있는 노동자들의 불이익을 상쇄할 만한 사회안전망을 요구했는데, 결국 깎이는 임금을 세금으로 채워달라는 얘기여서 정부가 수용하기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노동시장 개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청년층과 중장년층, 원청과 하청기업 간에 불거진 격차를 해소하자는 것이 취지다. 정부 지원과 함께 시장 참여자의 양보와 배려가 전제된다.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플레이어들이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게임을 했으니 한계 노출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엔 적기(골든타임)가 있다. 그때를 놓치면 일처리가 어렵거나 불가능해진다. 그렇지만 골든타임보다 중요한 게 있다. 디테일(구체 내용)을 확보하는 작업이다. 2013년 4월 개정돼 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년 60세법(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디테일의 중요성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국회 통과를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임금피크제 의무 시행’이라는 디테일을 놓쳤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청년층의 ‘고용절벽’이 본격화하고, 노동생산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임금구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골든타임보다 디테일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독일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국가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르츠 개혁’을 통해 노동시장을 광범위하게 바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8년 노사정 대타협에 실패한 그는 4년 후인 2002년 하르츠위원회를 통해 잡센터, 미니잡 등 구체적인 내용들을 녹여 넣었고 노사 타협을 이뤄냈다. 노사가 합의한 개혁안은 2년여에 걸쳐 독일 연방의회에서 관련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최근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을 제대로 알리겠다며 범부처 홍보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다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부디 이번에는 골든타임보다 디테일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박기호 선임기자·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