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물값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대동강물 팔아먹은 김선달 얘기는 단순히 해학을 넘어 골계미에 이른다. 아호부터가 풍자적이다. 스스로 봉이라고 우겨 산 닭을 원님에게 바친 뒤 닭 주인에게 관청에서 맞은 맷값까지 받아내서 봉이다. 주막에 도포를 차려입고 며칠간 물지게꾼과 엽전 몇 닢으로 거래하는 척하며 한양 상인들을 끌어들인다. 그럴듯한 흥정으로 오르고 오른 강물값은 결국 4000냥에 낙찰된다. 황소 60마리 값이었다니 조선 후기 서민들에게 실감날 만한 최대 거금이었을 것 같다. 이런 패러디가 널리 퍼진 걸 보면 위선적 사회상에 대한 당시 민초들의 염증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도성의 잘난 깍쟁이들이 강물을 돈 주고 사다니! 정말 바보야!’라는 조롱의 이면엔 ‘물은 당연히 공짜’라는 인식도 엿보인다.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물도 상품이 됐다. 값도 천차만별이다. 석유보다 비싼 지구 건너편 알프스생수가 들어오는가 하면 지역별로 청정브랜드 경쟁도 치열하다. 국내 생수시장은 지난해 6000억원대로 커졌다. 연간 10% 안팎의 고성장세라니 연간 1조원 시장도 머지않았다.그래도 일상의 생활용수는 말 그대로 ‘물값’이다. 한국의 수돗물은 식수로도 나쁜 편이 아닌데, 값이 ㎥당 660.4원(2013년·전국평균)이다. ㎥당 849.3원인 생산원가에도 훨씬 못 미친다. 공공요금이라는 수돗물값에는 김선달 시대의 물값 관념이 남아 있는 셈이다. 지자체들의 밑지는 계산 덕에 물값은 아직 국제적으로도 싼 편이다. ㎥당 일본이 1277원, 미국 1540원, 프랑스 2521원, 영국 2543원, 독일 3355원, 덴마크 4157원이다.

하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어느 시·도인들 선뜻 정당한 값을 매기려 들질 않는다. 1조3000억원으로 늘어버린 상수도 부채도 언젠가, 누군가가 갚아야 할 비용이다. 그래도 전기·지하철 요금처럼 코스트 개념이 작동 않는 영역이다. 내 임기 중엔 인상하지 않겠다는 단체장들의 인기영합적 님트(NIMT·not in my term) 현상도 한몫했다. 그나마 부산 대구 광주 제주가 올해부터 매년 3%씩 올린다니 비용구조는 아는 모양이다.

원가로 보면 수돗물이 실상 상당부분 수입품이란 점도 간과된다. 물만 국산일 뿐 정제하고 수도관을 설치해 보내는 모든 과정에 필수적인 에너지 자체가 수입품이다. 온수가 달러로 데운 물인 것과 같다. 장기간의 가뭄에도 아직까지 언제나, 어디서나 콸콸 쏟아지는 ‘유비쿼터스 수돗물’이 된 데는 댐과 보 건설 등 가려진 코스트도 많다. 이 점만 잘 인식해도 가뭄의 교훈은 충분하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