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금리 인하' 아닌 기업이 경기 살린다

돈 풀어 불황 넘겠다는 정책 발상
가계부실에다 구조조정 늦출 뿐
기업 창의성 살릴 규제혁파 시급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
지난 11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1.50%로 0.25%포인트 낮췄다. 수출이 부진한 데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경제주체의 심리와 실물 부문의 경제 활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설명이었다. 금리 인하가 경제 회복의 수단은 아니고 더 침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점을 이해하더라도 그 이유가 구차하다.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에는 확연히 다른 성격을 가진 경기변동과 경기순환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경기변동이란 소비자의 선호, 노동의 양과 질, 고갈되기도 하고 새롭게 발견되기도 하는 자연 자원, 기술 수준 등의 불규칙적인 변화로 경제가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반면에 경기순환은 주로 통화 팽창에 따른 규칙적인 패턴을 그리는 경제 변화를 지칭한다.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에 불규칙적인 변화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경제학은 이런 변화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설명한다. 그것이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뿐 그런 변화를 근원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경제 안정화’라는 말은 애시당초 가당치 않은 개념이다. 인간 세상의 본질적 속성이 그러하고, 인간은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꾸준히 행동하므로 그런 정책이 추구하는 안정화는 공허하고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메르스도 분명히 경기변동을 야기하는 예기치 않은 외적 요인이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메르스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 메르스가 없었던 경제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경기변동을 안정화라는 이름 아래 금리 인하 등의 금융정책으로 경기순환을 잉태하는 것이다. 단시간에 나을 수 있는 감기를 이런저런 처방으로 장기간의 몸살로 바꾸는 것이다. 1929년의 대공황이 그랬고 2008년 금융위기가 그랬다. 2000년대 초 닷컴 경제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분명 경기변동의 한 요인이었다. 그것이 두려웠던 미국 중앙은행(Fed)은 돈을 풀었고, 결국 2008년의 금융위기를 낳았다.

돈을 풀어 생긴 문제는 불황을 동반하는 경기순환 과정을 통해 극복된다. 그러나 이를 못 견디고 다시 돈을 풀면 불황의 골을 깊게 하고 경기순환의 기간을 길게 한다. 지금의 형국이 딱 그렇다.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가계와 금융회사의 동반 부실 가능성만 한층 높아지고 있다. 지금의 금리 수준이 정상(?)이라면 나중에도 인상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불황의 경제학과 호황의 경제학을 따로 설명해야 하는 난제(難題)와 마주하게 된다.세계 각국은 물론 한국도 재정 투입을 늘렸고 금리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는 별다른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상황 진단과 정책 시행에 따른 시차(時差)라고 하기에는 매우 긴 시간이 흘렀다. 금리 인하가 경제에 미치는 전달 경로도 설득력 있게 설명된 적이 없다. 결국 통화에서 시작된 문제를 다시 통화로 해결하려 한 진단과 처방이 모두 틀렸다는 결론을 피할 길이 없다.

반갑든 반갑지 않든 피할 수 없는 경기변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속성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미래의 수요와 공급 사정을 예측하는 일을 일상의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기업가다. 성공한 기업가란 미래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지금 남은 희망은 기업의 존망을 걸고 경기변동에 상대적으로 가장 잘 대응하는 기업가들의 통찰력과 창의성에 있다. 미국의 ‘셰일오일 혁명’이 대표적 사례다. 기업 활동을 억압하는 모든 규제를 풀고, 기업가들이 가진 역량을 집적해 일상의 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그들을 옥죄고 있는 모든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 지루한 불황의 늪을 탈출할 수 있는 길이다. 지금은 이들의 역량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