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내몰리는 중기] 엔저 "일본 경쟁사, 가격 30% 후려쳐"…메르스 "내수 급감, 공장 멈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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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막히고 국내 주문 얼어붙어 한계상황경남의 캠핑용품 제조업체인 A사는 최근 공장가동률을 30%가량 낮췄다. 엔저로 수출이 급감하고 있는 데다 최근 들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국내시장 주문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수출이 어렵지만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그나마 내수시장에 큰 기대를 걸었는데 예상치 못한 ‘메르스’란 악재 탓에 공장 인원을 줄여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반도체 장비업체 "해외시장서 계속 밀려나"
아웃도어업계 "여름 휴가철 특수 날아갔다"
○“엔저로 30% 가격 깎아”중소기업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장기화하고 있는 엔저 피해는 대기업 도움 없이 해외시장에서 기술력으로 경쟁한 업체들이 고스란히 입고 있다. 인천 반도체 장비업체 A사는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다. 반면 일본 경쟁업체들은 매출이 늘어났다. A사는 “반도체 호황에도 한국 장비업체들의 매출만 줄어들었다”며 “일본 경쟁사가 엔저에 힘입어 최대 30%까지 가격을 저렴하게 제시하며 고객사를 빼앗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엔저현상이 장기화하면서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수출하는 업체도 있다. 화학업체 B사는 올해 1분기 수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20% 줄었다. B사 관계자는 “주요 수출국인 일본에 지속적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순전히 관계 유지를 위한 것”이라며 “이익은 전혀 남기지 못한 채 판매만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본과의 수출경합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경합도는 특정 시장에서 두 나라 간 경쟁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1에 가까울수록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시장에서 한·일 수출경합도는 2010년 0.43에서 2014년 0.51로 높아졌다.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가장 큰 매출처인 대기업의 실적 악화도 직격탄이다. 대기업에 필요한 부품 장비 소재 등을 납품해 먹고사는 중소기업이 전체의 40% 정도다. 이 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엔저와 중국 경제 성장 둔화로 어려움에 처한 대기업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더 낮은 가격에 납품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1차 협력사 모임 ‘협성회’ 전체의 실적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 협성회 12월 결산법인 171개사의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2013년에 비해 각각 4.8%, 22% 급감했다. 올 1분기 실적을 공개한 협성회 상장사 77곳의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2.23%, 영업이익은 18.6% 각각 줄었다.
조영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제대로 된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 없이 임시방편적으로 지원정책을 펴온 결과가 중소·중견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며 “5년 후를 내다보는 근본적인 산업정책을 만들어 펴나가지 않으면 안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내수 … 아웃도어 타격엔저와 중국 기업들의 추격 등으로 ‘샌드위치’ 신세인 중소기업들은 메르스 여파로 인한 내수 부진에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휴가철 특수 등을 노렸던 텐트용품 업체와 아웃도어 업계는 썰렁해진 경기에 울상을 짓고 있다. 아웃도어 업계 관계자는 “갑자기 나빠진 경기 탓에 매출 목표를 재조정하고 있다”며 “메르스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우커(중국인 관광객) 감소와 야외활동 기피로 매출 하락이 가시화되고 있는 화장품 업체와 생활용품 업체들도 바싹 긴장하고 있다.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브랜드숍 매출 1위 업체인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이 명동과 동대문에서 운영 중인 9개 매장의 6월 첫째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가량 감소했다. 이니스프리 역시 명동·동대문 상권에서 한 자릿수 정도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르스 확산이 단기적으로 소비재 업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의 강도는 화장품, 의류, 생활용품 순”이라며 “작년 세월호 사태가 심리적인 요인이 컸다면 이번에는 물리적인 외부 활동 자제로 인한 소비 둔화로 이어져 내수산업은 단기적으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안재광/김희경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