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칼레도니아, 지구의 모든 파랑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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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E1
황홀한 블루에 취해…카메라 대신 눈으로 담은 그대, 그리고 바다
하늘과 물이 입맞춘 해변…섬에 내리자 신발부터 벗어던졌다
누메아서 20분이면 닿는 일데팽
푸른 소나무숲 품은 보물섬
스노클링으로 본 바닷속은 장관
물에 뜬 하얀사막의 섬 노캉위
초현실 미술작품 감상한 듯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옥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 즐겨 찾는 뉴칼레도니아지만 원래는 프랑스 죄수들의 유배지였다. 천국에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곳을 감옥처럼 썼다니 이상하게 들리지만 사실이다.1864년부터 33년간 2만명이 넘는 프랑스 죄수가 이곳으로 이송됐다. 파리에서 약 1만6700㎞ 떨어져 있어 죄수 격리에 그만이었다. 아프리카와 남미처럼 말라리아 황열병 등의 풍토병이 없어 간수들도 안심할 수 있었다. 죄수들은 항만공사 등 고된 노역에 투입됐다. 하얗던 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원주민과 구분하기 어려운 구릿빛으로 바뀌었다.
죄질을 떠나 머나먼 곳으로 쫓겨난 죄수들의 한숨이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도 못 하겠다.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뉴칼레도니아의 자연만이 이들을 위로했으리라. 뉴칼레도니아를 유형지로 선택한 것은 프랑스 정부의 마지막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푸른 고슴도치 일데팽에 빠지다뉴칼레도니아의 아름다움을 한 곳에 모은 ‘모델하우스’가 있다면? 소나무섬이라는 뜻의 일데팽(Ile des Pins)이 가장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일데팽에 들르지 않겠다면 굳이 뉴칼레도니아에 갈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뉴칼레도니아가 고이 간직한 보물섬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도인 누메아에서 남쪽으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20분이면 섬에 닿는다.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일데팽은 마치 푸른 고슴도치 같은 모습이다. 섬의 주인인 열대 소나무 아로카리아가 땅에 바늘을 꽂은 듯 빽빽한데 파란 바다와 어울려 멋진 하모니를 연출한다. 길이 18㎞, 너비 14㎞의 작은 섬이지만 일데팽에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중 세 군데만 돌아봐도 뉴칼레도니아의 파란 바다를 실컷 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쿠토 해변과 맞닿은 숲을 지나 반대편으로 가면 카누메라 만(Kanumera Bay)에 닿는다. 조금 이동했을 뿐인데 쿠토 해변과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고운 모래 대신 고사한 나무가 해변 여기저기에 누워 있다. 그 조용한 정경은 마치 생과 사를 표현한 예술작품 같다. 바다에 자리한 신성한 바위(Sacred Rock)는 카누메라 풍경의 백미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소나무를 잔뜩 이고 있는 바둑돌처럼 생긴 바위다. 걸리버 같은 거인이 여흥을 위해 깎아 만든 바둑돌을 여기에 흘린 것이 아닐까 싶은 모양새다. 죽은 나무와 잔잔한 파도, 바람에 흔들리는 신성한 바위가 어우러져 작품을 만들어낸다. 카메라는 던져 두고 오래오래 바라보고픈 풍경. 어떤 유명 미술가가 오더라도 이 감흥을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오로 자연 수영장(Oro Bay natural pool)도 빼놓을 수 없다. 바닷물로 채워진 자연 수영장이다.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들고 산책하듯 걸어가자 눈을 황홀하게 하는 비취색 물빛이 나타났다. 잔잔하고 수심이 깊지 않아 전혀 바다 같지가 않다. 오로만 입구는 해수면 높이의 바위가 막고 있어서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는 바다다. 수심 1~2m 정도의 물속으로 들어가면 형형색색 산호와 열대어가 깜짝 놀랄 만큼 많다. 자연 수영장 주변에는 아로카리아 나무가 바람까지 막아줄 것처럼 빙 둘러져 있다. 요정들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서 물을 막아 수영장을 짓고 인테리어를 꾸몄다고 해도 믿을 만큼 완벽한 정경이다. 일데팽을 이야기할 때 눈앞의 장면은 두고두고 뇌리에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데팽이 뉴칼레도니아의 ‘끝판왕’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아직도 깜짝 놀랄 만한 장소가 남아 있었으니, 일데팽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물에 뜬 하얀 사막처럼 보이는 섬이 있다. 섬 이름은 노캉위(Nokanhui). 바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가갈수록 점점 동공이 커진다. 섬 주변의 물 색깔이 묘하다. 파란색으로 정의할 만한 모든 물감을 죄다 뿌렸나보다. 일데팽에서 익숙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 눈이 또다시 어지러울 지경이다.
바다가 또다시 시선을 잡아끈다. 해가 구름 위를 지나고 드러날 때마다 물색이 변한다. 산호가 부서져서 바닥에 깔린 얕은 바다에서만 이런 색이 나온다. 마치 파란색으로만 이뤄진 만화경을 들여다 보는 듯하다. “감상이 어때?” 바다 앞에서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나를 향해 으스대듯 파도가 말을 건넨다. 하지만 무슨 말이 필요하랴.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껴안은 태초의 섬 뉴칼레도니아는 그렇게 망막에 조각되듯 박혀버렸다.
뉴칼레도니아의 관문이자 수도인 누메아(Noumea). 단순히 일데팽이나 노캉위로 가기 전 들르는 도시가 아니다. 19세기에 들어온 프랑스 문화가 섬 특성상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 같다는 수식어가 붙었다.
파리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의 작품으로, 단순히 문화센터라고 하기에는 건축미가 워낙 뛰어나서 그 자체가 하나가 예술품처럼 느껴진다. ‘카즈’라는 원주민 전통가옥 양식을 모티브로 설계했으며 새알을 사선으로 단칼로 자른 듯한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렌조 피아노는 6개월간 현지에 거주하며 건물 디자인을 구상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도 받았으니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내부 전시물보다 외관으로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이 문제일 정도다.
활기찬 현지인의 모습을 만나려면 어디나 시장이 제일이다. 모젤항 부근의 누메아 아침시장은 꽃, 과일, 생선 등을 판매하는 전통시장이다. 기념품도 판매하는 만큼 잠시 짬을 내 둘러보면 좋다. 카페에서 현지인과 어깨를 부딪히며 마시는 커피 한 잔도 여행의 흥을 돋운다.
추천 숙소
르메르디앙 일데팽(Le Meridien Ile des Pins)은 섬의 유일한 5성급 호텔이다. 품격 있는 숙소를 원하거나 로맨틱한 여행을 꿈꾸는 연인이라면 다른 선택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오로 자연 수영장에서 1㎞ 거리에 있다는 것도 장점. 호텔에서 빌려주는 스노클링 장비와 오리발을 갖고 수족관을 옮긴 듯한 오로 자연 수영장에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 객실은 오로만이나 열대 정원의 전망을 볼 수 있는 테라스를 갖추고 있다. 밖에 마련된 침상에 누워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초록빛 절정을 즐기거나 카약을 빌려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것도 큰 재미다.
뉴칼레도니아, 어떻게 갈까?한국에서 뉴칼레도니아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일본 도쿄나 오사카를 통해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뉴칼레도니아의 국적 항공사인 에어칼린(aircalin.co.kr)은 나리타와 오사카에서 누메아로 가는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도쿄 나리타에서는 주 5회(화·수·목·토·일요일) 낮 12시30분 누메아로 출발한다. 오사카에서는 주 2회(월·금요일) 오전 11시30분 누메아로 떠난다. 비행시간은 약 8시간30분. 신혼여행객의 경우 호주 시드니를 경유해 뉴칼레도니아를 여행한 뒤 일본을 거쳐 돌아오는 노선이 인기다. 구간별로 무료 스톱오버를 할 수 있어서 한 번에 3개국 여행도 가능하다.
누메아=글·사진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