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체스, 아이돌 배우가 소화하기 버거운 냉전시대의 비극

리뷰
‘미스매치(mismatch)’란 패션용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는 ‘부조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패션업계에서는 서로 맞지 않는 아이템을 의도적으로 조합해 새로운 미적 감각을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체스’(사진)는 여러 면에서 의도적인 미스매치를 시도한다. 극중에서 비슷한 비중과 위상을 가진 두 명의 남자 주인공에 아이돌과 베테랑 배우를 나란히 배치한 캐스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부조화는 공연예술에서 의외의 조합이 빚어내는 참신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이 작품은 1980년대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세계 체스 챔피언십에서 만난 미국 챔피언 프레디와 러시아 챔피언 아나톨리의 대립과 프레디의 조수 플로렌스와 아나톨리가 사랑에 빠지며 겪는 운명의 소용돌이를 그린다. 유명 뮤지컬 작사가 팀 라이스와 슈퍼밴드 아바(ABBA)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은 1986년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작이다.

‘아이돌 캐스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공연제작사 엠뮤지컬아트는 이 작품을 국내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며 아나톨리 역에 현역 아이돌인 조권·키(Key)·신우·켄을 캐스팅했다. 맞수인 프레디 역엔 중견 배우인 신성우와 이건명을 내세웠다. ‘아이돌 조련사’로 정평이 난 왕용범이 연출을 맡았다. ‘삼총사’ ‘조로’ ‘로빈훗’ 등 엠뮤지컬아트와 왕용범 연출의 이전 작품에서 아이돌은 각자 개성을 살릴 만한 배역을 맡아 베테랑 배우들과 모나지 않게 어우러지며 극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공연의 아이돌 캐스팅은 무리수다. 극중 40대의 나이로 냉전의 시대적 아픔을 몸으로 겪는 아나톨리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젊은 아이돌 배우가 소화하기에 버거웠다. 특히 맞대결을 펼치는 프레디 역의 배우와는 무게감과 표현력 등에서 ‘급’이 맞지 않았다.드라마의 헐거운 짜임새는 이런 부조화를 더 드러나게 한다. 아나톨리가 플로렌스와 사랑에 빠져 망명을 결정하고 정치적 공작으로 다시 헤어지는 과정에 극적 설명이 불충분하다. 배우의 연기가 드라마의 부족한 개연성을 보완하기는커녕 설득력을 더 떨어뜨린다.

영상을 활용한 속도감 있는 시공간 이동과 3m가 넘는 체스 말을 들고 펼치는 군무 등 무대 연출은 볼 만하지만 드라마와 음악은 진부하고 낡은 느낌이다.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왕용범 특유의 유머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아이돌 캐스팅으로 새롭게 되살리기에는 적절치 않은 작품이다. 다음달 19일까지, 4만~1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