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정갑영 연세대 총장 "메르스 사태 되풀이 않으려면 민·관합동 국가 재난병원 설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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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난병원 화두 꺼낸 정갑영 연세대 총장정갑영 연세대학교 총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과 같은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 재난병원을 민관 합동으로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연세대 신촌캠퍼스 총장실에서 만난 정 총장은 “메르스 사태에도 배우지 못한다면 한국 재난의료에는 미래가 없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정 총장은 “민간을 배제한 국영병원 형태로 추진하면 경쟁력과 효율성이 떨어져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의 재정과 민간의 경영 노하우, 우수한 인력이 결합해 시너지를 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연세대는 재난병원 건립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며 학교가 보유한 부지를 기부채납(공공기여)할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국가재정·민간 경영 노하우 결합해 시너지 내야 성공
재난병원 건축하면 연세대 보유 부동산 기부채납 용의
교수 5년마다 평가해 호봉 조정…명예특임교수제 도입
10월 전면 개방하는 백양로, 문화·소통·융합공간 될 것
만난 사람=이재창 부국장 겸 지식사회부장
정 총장이 처음으로 재난병원 화두를 던진 건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기 두 달 전인 올 3월 초다. 괴한에 피습당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문병하기 위해 신촌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다. 그리고 두 달 뒤 메르스가 한국 사회를 휩쓸면서 재난병원 설립이 당면 현안으로 떠올랐다.
▷메르스 사태 두 달 전에 이미 재난병원 건립을 제안했습니다.
“작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계기였습니다. 295명이 죽고 9명이 실종되면서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 등 수많은 사람이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특화된 치료를 담당할 국가 차원의 병원이 없더군요. 재난 피해자들에게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련 연구와 교육을 담당할 국가 차원의 병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아직 재난병원의 개념이 생소합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설명해보겠습니다. 이번 메르스 확산의 원인은 초기대응 실패였습니다. 감염자와 접촉자 등을 초기에 확실하게 격리·관리할 병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형병원조차 감염 통제에 필요한 음압병상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메르스 같은 감염병은 전 국민을 위협할 수 있는 재난인데도, 평소 충분한 준비가 없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죠. 국가 재난병원은 이 같은 재난 대처를 기본으로 하는 병원입니다. 평소엔 일반 병원처럼 진료하다 재난이 발생하면 즉각 재난병원 체제로 전환해 응급치료를 수행합니다. 정신적 외상이나 감염 등 다양한 유형에 따라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겁니다. 아울러 재난과 관련된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재난의료 관련 지식 및 실무 교육을 담당하게 됩니다.”
▷해외에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가 있습니까.“우선 미국은 동부에서 하버드대 의과대학 부속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 서부에서는 UCLA 로널드레이건병원 등이 재난병원 역할을 합니다. 국립병원으로는 재향군인병원이 있지만, 특성이 다양한 재난환자를 돌보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해 민간 의대 부속병원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진이나 화산 등이 잦은 일본도 후생노동성 소속 독립행정법인인 국립병원기구가 재해의료센터를 운영합니다. 국가가 재원을 지원하지만 민간 주도로 운영됩니다.”
▷국영이 아닌 민관합동 재난병원을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재난병원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합니다. 메르스로 화제가 된 음압병상은 한 개에 최소 1억5000만원이 듭니다. 민간이 참여해 경영효율성을 높이지 않으면 국가가 치러야 할 비용은 더 크게 불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높은 수준의 의료진을 확보하는 데도 순수 국영 의료기관은 불리합니다. 민간이 경영 노하우를 활용해 병원을 운영하며 우수 의료진을 확보하고, 정부는 적자보전과 병원 관리감독을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해야 합니다. 1991년 세계 최초로 민관 협력형 병원체제를 도입한 영국이 좋은 선례입니다. 이 같은 모델로 재난병원을 건립하면 연세대도 참여할 의향이 있습니다.”▷연세대가 국가 재난병원 건립에 가장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미국 선교사 호러스 알렌이 1885년 연세대의 모체인 제중원(한국 최초의 근대병원)을 설립, 의료를 통한 사회 공헌이 연세대의 창립정신이 됐습니다. 이 같은 뜻을 이어 받아 연세의료원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적자 요인이 많은 어린이병원과 재활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세대는 올해 창립 130주년을 맞아 창립정신을 되새기고 의료를 통한 사회공헌을 강화하려 합니다. 최근에야 이슈화하고 있지만 국가 재난병원 건립에 대한 사례 연구도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민관합동 국가재난병원을 설립한다면 학교 보유 부동산을 기부채납할 용의도 있습니다. 설립 재원도 연세대가 나서 모금할 생각이 있으며 일부 민간단체는 이미 동참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신촌캠퍼스에 거대한 ‘지하캠퍼스’가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명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입니다. 지상은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 안전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지하는 교육·연구·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공사입니다. 다음달 말 지상이 개방되고, 10월 초에는 지하공간도 문을 엽니다. 공사 전에는 백양로를 기준으로 동서로 양분됐던 연세대 캠퍼스가 융합과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총동문회장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기부로 백양로 지하에 들어서는 금호아트홀(390석 규모)은 중·소규모 공연과 학교 행사 등에 사용됩니다. 지하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개방 공간에는 소규모 노천광장도 생깁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문화를 즐길 공간이 대폭 늘어날 것입니다.”(정 총장은 인터뷰에 앞서 기자와 함께 백양로 지하 공사 현장을 찾았다. 한창 공사 중인 내부는 뻥 뚫린 회색 공간이었지만 정 총장은 어디에 어떤 시설이 들어서는지를 설명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
▷요즘 구조개혁이 대학가의 최대 화두입니다.
“연세대는 지난 수년간 꾸준히 내부 시스템을 개혁했습니다. 교직원 인사 제도가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8월 노조와 상생합의를 맺고 40년 넘게 지속되던 단순 호봉제를 성과 연동제로 전환했습니다. 반값등록금과 대학정원 감축정책 등으로 재정 여건이 나빠졌고 기존 보상체계로는 행정 효율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 노사 모두가 공감한 결과입니다. 아울러 비정규직 상근직원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지난 2월부터 시행 중입니다. 교직원들은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고 학교는 행정의 연속성과 수월성을 얻은 것입니다.”
▷교수들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교수들에게도 특별호봉 승진 기회를 열어놨습니다. 정교수를 5년마다 평가해 성과가 우수하면 호봉을 올려주는 것입니다. ‘명예특임교수’ 제도도 도입했습니다. 교육·연구·학교봉사 등의 평가 결과가 우수하면 정년인 65세 이후에도 70세까지 명예특임교수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큰 동기부여가 된다는 평가가 교수들 사이에 나오고 있습니다. 2013년 9월 첫 임용을 시작해 현재 5명의 명예특임교수가 있습니다.”
■ 정갑영 총장은…
경제학자인 정갑영 총장은 느릿한 말투에 온화한 인상이지만 학교 업무에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다. 신입생 전원이 기숙사에 살면서 학습과 생활을 함께하는 RC(Residential College)제도를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에 도입했다. 신촌캠퍼스 정문에서 본관까지 이어지는 백양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그 밑에 ‘지하캠퍼스’를 두는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도 그의 작품이다. 학교 구성원과 소통할 일이 있으면 학생들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설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만화로 읽는 알콩달콩 경제학’ ‘명화 경제토크’ ‘열보다 더 큰 아홉’ 등 대중 경제서를 집필했다. 200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시장경제대상을 받았고, 2011년 한경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했다.△1951년 전북 김제 출생 △전주고 졸업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원주캠퍼스 부총장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 △감사원 혁신위원장
정리=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