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술 강요, 3000만원 배상"

술 강권하는 회식문화 법적으로도 불법행위
취향과 신념 존중해야 진정한 소통정신 회복

강영호 < 특허법원장 kang@scourt.go.kr >
회식 자리에서 술을 강요하는 것이 불법행위가 되는가. 결론은 ‘그렇다’는 것이다. 2007년 5월 서울고등법원은 회식 자리에서 직장상사로부터 술을 강요받은 여직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술을 강요한 직장상사는 여직원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해 6월 미국 뉴욕타임스에 ‘한국 여성들, 술병을 닫다’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됐다.

법원이 술을 강요하는 것을 불법이라 판단한 이유는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체질이 달라 술을 잘 마시는 사람도 있고, 못 마시는 사람도 있다. 건강이나 종교적인 신념 등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조금밖에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무시하고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는 행위는 건강이나 신념 또는 사생활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술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회사원들에게 “회사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회식문화’라고 답했다는 설문조사가 많다. 특히 회식을 하면서 술을 강요받는 것을 꼽았다. 이로 인해 직장을 떠나는 동료들도 있고, 본인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인격적인 모욕을 느끼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는 국민 개개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자신의 기본 특성을 평등하게 인정받을 때 유지된다. 이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별 없는 존경과 배려로 서로 관용을 베풀 때 이뤄진다. 술을 못하는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다. 체질적으로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는 사람은 술로 인해 두통과 구토, 호흡곤란 등 많은 신체적 고통을 느낀다. 동양인 중에선 술을 분해하는 효소를 가진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종교적인 이유나 신념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이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려면 그 생각을 존중해줘야 한다.

이제 회식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모두가 즐겁고 소통할 수 있는 회식이 돼야 한다. 그래야 창의성을 높이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남에게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준다면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강영호 < 특허법원장 kang@scourt.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