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너 소사이어티 1호 회원' 남한봉 유닉스코리아 회장 "죽을 고비 넘기고 다시 본 세상, 나눔에 눈 떴죠"

나누는 삶

軍 복무중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 딛고 전시사업 中企 일궈

2008년 뇌경색 이후 기부 결심
가족에게 기부 하루 전날 알려
꽃다운 스물세 살에 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몸만 불편할 뿐”이란 마음으로 악착같이 버티며 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산업 관련 중소기업을 일궈냈다.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준 뒤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일흔 살에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하룻밤 하룻낮 동안 사경을 헤맨 끝에 깨어났다. 집착을 버렸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1억원을 선뜻 기부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의 첫 번째 회원인 남한봉 유닉스코리아 회장(77·사진)의 사연이다.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있는 유닉스코리아 사무실에서 남 회장을 만났다. 13.2㎡짜리 집무실의 사무용 가구 중 새것은 하나도 없었다. ‘회장실’이라면 있음 직한 소파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책상이랑 책장, 파티션 모두 중고로 산 것”이라며 “사무실엔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되고, 가구는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이면 되지 굳이 화려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경북 경주 출신인 남 회장은 1963년 헌병대 상병 복무 시절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다. 사회에 나와 처음 시작한 일은 중고 타자기와 계산기, 복사기 등 사무용 기기 판매였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무역협회에 납품하면서 어깨너머로 MICE산업에 눈뜨게 됐다. 1979년 한국종합전시장(현 코엑스) 내 비서용역업체 입찰에 참여해 선정된 뒤 그해 유닉스코리아를 설립, 전시장 부스 설치와 통·번역 서비스 제공 등의 사업으로 진로를 바꿨다.

사업 시작 후 하루도 쉬지 않았다. 남 회장은 “한 번도 휴가를 간 적 없다”며 “돌이켜보면 너무 잔인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창 일할 나이였던 20~30년 전엔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여건도 안 됐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해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고 털어놨다. 또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장에 직접 갔는데 계속 걷다 보면 발에서 피가 나기도 했다”며 “두 다리에 감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픈 줄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2008년 남 회장을 덮친 뇌경색은 앞만 보고 달려온 그의 인생을 또 한번 바꿔놓았다. 그는 “회사에서 일하다 갑자기 쓰러졌는데 눈을 떠 보니 하루가 지나 있었다”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한 번뿐인 삶을 후회 없이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택한 게 나눔이다. 기부할 곳을 수소문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년 12월 아너소사이어티를 설립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8년 5월 남 회장은 사재 1억원을 내놓으며 아너소사이어티의 1호 회원으로 등록했다. 지난 5월 현재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수는 총 821명에 달한다.남 회장은 “가족이나 지인이 말리면 기부를 포기하게 될까봐 가족에겐 기부 전날 알렸다”고 전했다. 기부 후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나왔다. 그의 통장과 유닉스코리아 회계장부엔 탈세 또는 회계조작이 없었다. 그는 “원칙을 지키며 바르게 살자는 마음을 확인받아 기뻤다”며 “자선은 ‘세상에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3도, 4도 될 수 있다’는 너그러움을 내게 알려줬다”고 설명했다.

남 회장은 현재도 뇌경색 투병 중이다. 그는 편안히 미소지으며 강조했다. “잊을 것은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웠다 해도 보람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게 좋죠. 뭔가를 나눠준다는 건 마음에 큰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