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다음 공격 대상은 삼성전자·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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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가서 헤지펀드 만나고 온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
월가 자본은 엘리엇 편…ISS 합병 반대 권고도 그 연장선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 52%…헤지펀드 공격 '타깃'
막대한 자금력 앞세워 지배력 취약한 한국 기업 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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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월가의 행동주의 사모펀드 운용사 14곳을 면담하고 돌아온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56·사진)는 “풍부한 유동성으로 실탄(투자금)을 비축한 월가 헤지펀드들이 아시아로 몰려오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입한 직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정통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알려지면서다. 그는 1985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로 출발, 약 8년간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자산운용 대표를 거친 뒤 지난해 ‘기업지배구조 개선’ 투자 전략을 특화한 자문사를 창업했다.▷미국을 어떤 목적으로 다녀왔나.
“국제재무분석사(CFA) 3차 시험 채점을 하러 갔다가 뉴욕에 들렀다. 자나파트너스, 그린라이트캐피털, 메이슨캐피털매니지먼트 등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쟁쟁한 투자 실적이 있는 운용사 14곳과 미팅을 했다.”
▷월가 분위기는 어땠나.“월가 투자자들은 이미 엘리엇이 사로잡은 것 같더라. 엘리엇과 같은 공격적 성향의 헤지펀드들은 월가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볼 수 있다. 국제 의결권 자문회사인 ISS 등도 합병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나.”
▷삼성엔 좋지 않은 소식이다.
“결국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들고 있는) 국민연금의 선택이 합병 성사 여부를 좌우할 것이다. 단기적인 이익이냐, 장기적인 가치냐를 잘 따져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삼성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주주 친화적인 경영을 해야 한다. 경영권을 물려받을 이재용 부회장은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주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주주가치 제고방안을 발표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엘리엇은 삼성화재와 삼성SDI 지분도 1%씩 샀다. 무슨 의도인가.“삼성SDI와 삼성화재는 삼성물산의 대주주다.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통과되면 삼성SDI와 삼성화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상법상 1% 지분을 가져야 회계장부열람권, 주주대표소송 등 권한을 갖는다.”
▷얼마 전 영국계 헤지펀드인 헤르메스도 삼성정밀화학 지분 5%를 확보했는데.
“월가의 헤지펀드들은 삼성전자와 삼성SDS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합병 등과 같은 지배구조상 변화를 예상하고 있는 것 같더라. 상당한 연구를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삼성전자의 해외 주주는 약 52%다. 삼성 내부의 지배력이 취약하다는 사실은 헤지펀드들도 잘 알고 있다.”
▷왜 삼성전자에 관심을 갖는지 설명해달라.
“이번에 삼성전자 지분 3%(시가 5조5000억원 규모)에서 5%(9조1500억원)를 갖고 있는 헤지펀드 운용사 관계자를 만났다.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값싼 정보기술(IT)회사라고 하더라. 삼성물산과 마찬가지로 삼성전자 주식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헤지펀드들이 삼성전자를 공격하면 어떤 요구를 할 것 같나.
“과거 패턴을 보면 반도체나 휴대폰 사업부를 분사하라, 또는 매각하라는 요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소니도 2013년 헤지펀드(서드 포인트)로부터 엔터테인먼트 분사와 매각을 요구받았다. 삼성전자가 헤지펀드 간섭 때문에 제대로 경영을 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경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 심각하게 봐야 한다.”
▷엘리엇이 삼성전자 주식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나.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폴 싱어 회장(엘리엇 창업주)이라면 미리 샀을 것 같다.”
▷국내 다른 기업들도 헤지펀드 공격을 우려하고 있는데.
“월가가 삼성 다음으로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이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뿐만 아니라 기업공개(IPO)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엔지니어링도 면밀히 연구하고 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드러날 허점을 노릴 수도 있다.”
▷갑자기 한국 기업에 대한 헤지펀드들의 관심이 커진 이유는 뭐라고 보나.“최근 미국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부쩍 돈이 몰리고 있다. 연평균 20% 이상 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미국 내 운용사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아시아, 유럽으로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엇만 하더라도 삼성뿐 아니라 홍콩의 10위권 은행(Bank of East Asia) 지분을 매입한 뒤 소송 등으로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