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40대 초반에 조세연구원장…정치인으로 변신 계기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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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공급 늘리는 게 최선책…10년 전 같은 집값 급등 없을 것"선친 야당 정치인 시절 생활 보며
‘정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외환위기 때 조세硏 해체 막아내
정치권서 러브콜 받으며 정계 입문
18대 국회 ‘공약이행 1위 의원’ 뽑혀
정책통·마당발 평가 속 재선 성공뉴 스테이·공공임대 물량 늘려
중산·서민층 전·월세난 잡을 것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60)이 지난 7일 ‘맛있는 만남’을 위해 초대한 곳은 서울 동대문에 있는 중식당 동화반점이었다. 그리 크지도, 인테리어가 화려하지도 않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집’이었다. 2층 방으로 올라가자 동화반점과 진장원 사장을 소개한 신문과 잡기 기사 스크랩이 정돈되지 않은 채 붙어 있었다. 군데군데 흠집이 난 내부 인테리어와 빛바랜 음식 소개 홍보물로 식당의 전통을 가늠할 수 있는 정도였다.
오후 6시50분. 약속 시간을 10분가량 남기고 나타난 유 장관은 취재진과 인사를 나눈 뒤 바로 음식 주문부터 했다. “늘 먹는 거로 해주세요.” 단골만이 할 수 있는 주문법이었다. 음식점 소개가 이어졌다. “선친(유치송 전 민주한국당 총재)을 비롯해 (1970년대) 야당 정치인들이 자주 찾던 곳이에요. 저는 15년 전쯤부터 우연히 오게 됐는데 맛 하나는 기가 막힙니다.” 지난 3월 장관이 된 뒤 국토부 간부들과 회식을 한 곳도 이 식당이라고 했다. 유 장관과 동화반점의 인연이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갔다.학자를 꿈꾼 모범생 … 최연소 조세연구원장 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에서 2008년 정치인으로 변신한 유 장관은 학창시절에 대해 묻자 모범생이었다고 답했다. 그의 이력이 이를 보여준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40대 초반, 최연소 조세연구원장도 맡았다. 50대 중반 재선 국회의원이 됐고 올해 국토부 장관에 올랐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진 전 국회의원, 김회선 새누리당 국회의원, 이규용 전 환경부 장관, 김준규 전 검찰총장,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 이진성 헌법재판관,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김신배 전 SK 부회장, 남중수 전 KT 사장 등이 그의 고교 동기생들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남 전 사장은 중학교(중앙중)와 고교 동기이고 고교 때 영어회화 동아리활동도 함께해 인연이 남다르다고 했다.알코올 도수가 58도인 대만 고량주 금문도가 음식보다 먼저 식탁에 올랐다. 유 장관은 “도수가 높아 빈속에 마시면 취한다”고 주의를 준 뒤 정작 본인은 한 잔을 바로 들이켰다. 백발(白髮)의 진 사장이 방으로 들어와 유 장관을 반겼다. 1970년대 유 전 총재가 자주 갔던 서울 을지로 중식당 ‘대려도’의 주방장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이라고 했다.
첫 메뉴로 넓은 접시에 담긴 커다란 알 모양의 팔보환자가 나왔다. 튀긴 돼지고기 껍질을 가르자 속에서 해물 팔보채가 나왔다. 유 장관은 술을 한 잔 더 마신 뒤 팔보환자를 입에 넣으며 최근 근황을 얘기했다. 이날도 오전 국회에 갔다가 오후엔 도로의 날 행사를 끝내고 오는 길이었다.
유 장관은 오랜 야당생활로 어려움을 겪었던 부친을 보면서 ‘정치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창시절 꿈도 학자였다. 희망대로 학자의 길을 걷던 그의 삶이 바뀐 건 41세 때인 1996년 조세연구원 부원장으로 발탁되면서다. “당시 최광 조세연구원장(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젊은 부원장을 뽑겠다며 KDI에 있던 저를 부원장에 임명했어요.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설명이 안 돼요.”이듬해 말 외환위기가 터졌고 최 원장 후임인 김중수 원장은 정권이 바뀌자 자진 사퇴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 대대적인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하면서 조세연구원은 폐지 위기에 몰렸다. 연구원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유 장관은 부원장 자격으로 연구원을 살리고자 백방으로 뛰었다. “매일 심사위원 교수와 관료들을 찾아가서 ‘한번만 살려달라’고 읍소했어요.” 조세연구원은 그대로 남았고 유 장관은 최연소 연구원장에 올랐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그는 연구원 경영평가에서 두 번이나 1등을 하는 실적도 남겼다. 유 장관은 “뜻이 맞는 동료, 선·후배들과 즐겁게 일했던 것이 좋은 실적을 낸 비결”이라고 말했다.
“동료·선후배의 평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세연구원장직을 마치고 KDI 대학원 교수로 돌아왔다. 먼저 정계에 진출한 선·후배들이 그를 정치권으로 불렀다. 몇 차례 출마 권유를 고사했지만 부친이 별세한 뒤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2008년 총선 공천심사위원이던 이종구 전 의원(법무법인 광장 고문)이 적극 권유했다. 이 전 의원은 유 장관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다. 처음엔 부친 지역구인 경기 평택 출마에 도전했지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때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선거 직전에 서울 송파구(을)에 전략 공천되는 행운이 뒤따랐다.
국회에 입성한 유 장관은 18대 국회에서 법률소비자연맹이 임기 말 선정한 ‘공약이행 1위 국회의원’으로 뽑혔다. 이를 바탕으로 새누리당 재공천이 쉽지 않은 강남지역에서 다시 공천을 받아 천정배 당시 민주당 의원을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2012년 대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냈고, 새누리당 대변인도 맡았다. 재정·조세 전문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원만한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여·야 의견 조율 작업도 원만하게 해냈다는 평가다. “학교와 연구원 등에서 만난 친구, 선·후배들과 친하게 지낸 덕분에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아요. 동료와 선·후배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가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연구는 ‘과학’, 정책은 ‘예술’
금문도 한 병을 다 비우고 술기운이 어느 정도 올라올 무렵 국토부 장관 120일가량의 소회를 풀어놨다. 그는 학자일 때와 달리 정책에선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정부 정책에선 궁극적인 목표 달성도 중요하지만 국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조정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미래 목표 연구는 학자들이 할 수 있지만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파악해 이를 정책화하는 것은 공무원 몫입니다. 연구와는 상당히 다른 일이에요. 경제학자 출신인 벤 버냉키와 앨런 그린스펀(전 미국 중앙은행 의장)이 칭찬받는 건 정책을 적기에 펼쳤기 때문입니다. 정책 타이밍을 조정하는 작업은 과학이 아니라 ‘아트(예술)’예요.”
먹음직스러운 가재 요리인 깐쇼용화가 나왔다. 고소함이 일품이라고 했다. 그는 국회의원과 장관의 역할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원 때는 장관한테 소리도 지르고 했지만 정부에 들어오니 정책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이 작지 않아요. 180도 달라진 위상을 실감합니다.”
유 장관은 국토부 장관으로서 가장 큰 과제로 주택시장 안정을 꼽았다. “거래가 늘면서 주택시장이 어느 정도 활성화됐어요. 전·월셋값과 집값 상승세가 가파르지 않고 안정적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낮은 경제성장률, 저금리 등을 감안할 때 집값이 10년 전처럼 급등할 우려는 작다고 봅니다.”
전·월세난 해법은 꾸준한 공급 확대
시계가 오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 장관은 술을 한 병 더 주문한 뒤 말을 이어갔다. “정책의 큰 방향은 잡아가고 있어요. 10여년 전 서승환 전 국토부 장관이 집필한 책에서는 앞으로 주택도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상품이 될 거라고 언급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주택 공급 확대만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집값이 일시적으로 크게 오르내리면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
최근 국토부가 추진 중인 기업형 임대주택(뉴 스테이)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주택 임대차시장이 후진적인 것은 사실”이라며 “개인과 개인이 단순히 집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마지막으로 짜장면과 물만두를 주문했다. 짜장 소스에 잘게 썰어넣은 양파 씹히는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으로 저소득층 주택정책을 밝혔다. “저소득층 주거 불안은 시장 실패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장에만 맡길 수 없고 국가가 개입할 부분도 있습니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계속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의 단골집 동화반점
40년 전통의 중식당…‘공룡알 모양’ 팔보환자 인기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이 즐겨 찾는 동화반점은 화교 진장원 사장이 내놓는 독특한 음식이 눈길을 끄는 중화요리점이다. 1970년대 중반 문을 연 이 중식당은 서울 동대문 쇼핑몰 밀리오레와 apM 사이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 2·4·5호선 환승역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4번 출구에서 가깝다.
짜장면(5000원) 볶음밥(5500원) 물만두(6000원) 등의 가격은 일반 중식당과 비슷하다. 짜장면은 춘장에 채소를 넣어 볶은 전통 방식으로 요리한다. 세 명이 먹을 수 있는 팔보환자(八寶環子·6만원)가 대표 요리다. 여덟 가지 보물을 뜻하는 팔보는 조개관자 해삼 생선 등 해산물과 버섯 죽순 등의 채소를 의미한다. 환자는 ‘둥근 것’이라는 뜻으로 둥근 갈색의 공룡 알을 연상시킨다. 오전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영업한다. (02)2265-9224
■ 조세·재정 전문가로 명성…박근혜 정부 정책 밑그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정보비대칭 여건 하에서 사회적 보험이론’이란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유일호 장관은 조세와 재정 전문가로 알려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근무할 때 국가 재정사업의 효율성과 타당성 관련 연구를 많이 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등과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을 비롯한 민생정책을 수립하는 핵심 브레인 역할을 했다. ‘강한 복지를 꿈꾼다’(2012년 출간)라는 책도 이때 냈다.△1955년 서울 출생 △1974년 경기고 졸업 △198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1989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1996년 한국조세연구원 부원장 △1998년 한국조세연구원장 △2002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2008년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12년 19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2012년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 △2013년 새누리당 대변인 △2014년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2015년 국토교통부 장관
이현일/김진수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