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약속 지킨 제자…원택 스님 '명추회요' 발간

“그 책을 번역해서 세상에 유포하면 후학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제. 그런데 번역이 될 지 모르겠다.”

1993년 7월 성철 스님(1912~1993)이 열반에 들기 석 달 전, 시봉(侍奉)하던 제자 원택 스님(72)이 명추회요(冥樞會要)를 출간하는 게 어떨지 묻자 성철 스님은 반기면서도 이렇게 답했다.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인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과 약속한 지 23년만에 명추회요의 한글 번역서를 국내 최초로 출간했다. 원택 스님은 “이 책의 번역은 큰스님이 열반하신 1993년부터 유업(遺業)으로 추진해왔던 작업”이라며 “23년 만에 출간을 마쳐 무거운 짐을 벗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명추회요는 불교에서 선(禪), 즉 마음공부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종경록의 핵심만을 모은 책이다. 영명연수 선사의 대표적 저술인 종경록 100권의 요지를 북송 시기 회당조심 선사와 영원유청 선사가 상, 중, 하 3권으로 간행한 것이다.

성철 스님의 말대로 작업은 순조롭지 않았다. 번역이 어려워 의뢰받은 학자들이 번번이 중도에 포기했다. 결국 번역 의뢰가 네 차례나 실패로 돌아간 끝에 중국에서 종경록 연구서가 나오면서 23년 만에 책이 나오게 됐다. 대진·선암 스님이 번역하고, 박인석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가 해제를 담당했다.명추회요의 ‘명추’는 ‘마음’을 의미한다. 종경록을 지은 연수 스님은 이 책에 대해 “일심(一心)을 종지로 들어 만법을 거울처럼 비춘다”, “펼치면 100권으로 확대되지만 수렴하면 일심으로 요약된다”고 설명했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듯 스승을 모신 원택 스님의 성철 스님에 대한 효심은 지극하다. 2014년엔 1992년 출간된 성철스님 백일법문에서 빠진 내용을 보충해 재출간했다. 성철 스님이 1950~60년대 팔공산 성전암에서 10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경전과 선어록을 열람한 뒤 부처의 핵심사상인 중도(中道)와 선(禪)의 요지를 담아 ‘불교란 무엇인가’를 정리한 것이다. 원택 스님은 ‘백일법문’을 재출간한 뒤 “이제야 성철 스님에게 밥값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원택 스님은 선림고경총서 2집으로 명추회요에 이어 오등회원을 번역한다는 계획이다. 또 ‘봉암사 결사’ 70주년과 ‘백일법문’ 개당 50주년이 되는 2017년에는 성철 스님의 선교관에 대한 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