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보다 강한 건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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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분노' 출간한 日 문단 선두주자 요시다 슈이치
'페이스오프 살인사건' 소재
"상대방의 어떤 점을 알아야 믿을 수 있는지 답 찾아나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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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대인이 겪는 사소한 일에서 출발해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사실적인 문체로 풀어낸다. 사람들의 삶 자체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묘사가 건조하고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다.최근 번역·출간된 그의 신작 분노(은행나무 펴냄)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선과 악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가의 장기가 잘 발휘된 수작이다. 작품 이름은 ‘분노’지만 보다 중요한 주제는 ‘의심’과 ‘믿음’이다. 그는 22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상대의 무엇을 알아야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소설을 썼다”며 “세상의 여러 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소설을 쓰면 새롭고 좋은 세상이 보인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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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선 범인이 도망치는 동안 세 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어촌에서 살던 부녀, 도쿄 광고회사에서 근무하는 청년, 오키나와에 사는 여고생 앞에 각각 의문의 남성이 등장한다. 그들은 낯선 사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살아간다. 하지만 범인이 성형수술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독자들의 머리도 바빠진다. 과연 누가 범인일까. 작가는 “작품을 절반 이상 쓰고 나서야 세 명 중 한 명을 범인으로 정했다”고 말했다.요시다의 인물과 상황 묘사는 세밀하기로 유명하다. 성 소수자와 사(私)금융 피해, 일본 주둔 미군 문제 등을 각각 다루는 세 가지 이야기를 한 작품에서 섬세하고 밀도 있는 구성으로 풀어낸다. 그는 “작가가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지가 중요하다”며 “인물의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끊임없는 의심 때문에 서로 갈등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범인이 누군지 밝혀지지만 그가 무슨 이유로 사람을 죽였는지, 왜 ‘분노’라는 글자를 남겼는지는 끝까지 알 수 없다.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결말로 인간사의 복잡함을 설명하는 장치라는 느낌을 준다. 독자들의 헛헛함을 간파한 듯 작가는 “분노보다 강한 것은 소중한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라고 말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