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돈 풀면 소비·소득 늘어난다는 승수이론…시장조정 과정 왜곡해 경기쇠퇴 '부메랑'으로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케인스 승수이론의 문제점

정부지출 늘리면 불황탈출한다는 믿음, 케인스의 승수이론이 뒷받침
금리 내려 돈 풀면 일시적 호황 부르지만 저축 늘지 않아 결국 재원 부족에 직면
투자 위축돼 다시 '불황의 늪' 빠져
정부지출 늘리려면 세금 더 걷어야 민간투자 재원 줄어드는 '구축효과' 발생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경기가 후퇴하거나 불황이 오면 으레 정부지출을 늘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그러면 정부지출 증가는 재정정책이란 명목으로 수행된다. 정부지출 증가로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믿음의 밑바탕에는 케인스 경제학의 승수이론이 자리 잡고 있다. 승수이론은 정부지출이 늘어나면 그것의 몇 배로 국민소득이 증가한다는 견해다. 이 승수이론은 거시경제 정책과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거시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과연 이 승수이론은 타당한 것인가.

케인스의 승수이론은 한 사람의 소득이 다른 사람의 소득이 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의 소득이 늘어나면 증가한 소득 일부가 소비지출에 쓰일 것이고, 그 소비지출이 다른 사람의 추가 소득을 창출하고 그 소득의 일부가 소비돼 또 다른 사람의 소득을 창출한다는 연쇄반응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소득이 증가해 지출이 늘어나면 경제 전체적으로 국민소득이 몇 배로 증가한다는 원리다.
예를 들어 개인이 추가소득의 90%를 쓰고 나머지 10%는 저축한다고 하자. 그리고 소비자들이 100억원만큼의 지출을 늘렸다고 하자. 그러면 판매자들은 100억원만큼의 소득이 생긴다. 판매자들은 100억원 중 10억원은 저축하고 90억원을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쓸 것이다.

이 지출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한 사람들의 소득을 90억원만큼 늘릴 것이다. 또 이 사람들은 90%, 즉 81억원을 소비에 지출할 것이다. 이런 소비지출은 그들에게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지출이 다른 사람의 소득이 되는 과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마침내 그 과정이 끝나면 총 국민소득은 최초의 지출 증가분 100억원의 10(승수)배인 1000억원(10x100억원)만큼 늘어난다.이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소비가 많을수록, 저축이 적을수록 승수가 커져 총 국민소득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소비성향이 95%면 승수는 20이 되고, 소비성향이 80%가 되면 승수는 5가 된다.

이 승수효과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즉 한 사람의 소득이 감소해 지출이 줄어들면 국민소득은 몇 배로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케인스 경제학에 따르면 투자나 소비 지출이 조금만 감소해도 경제를 불황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케인스 경제학은 승수이론에 따라 시장경제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시장경제가 과잉 및 과소 수요를 야기하면서 크게 변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해 정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승수효과에 따라 정부지출의 몇 배만큼 국민소득이 증가해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대응적 정부지출을 강조하는 케인스의 승수이론은 불황기에 존재하는 유휴자원에 의존한다. 불황기에는 많은 유휴자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출을 늘리면 언제든지 유휴자원이 고용돼 물가변동 없이 소득이 승수 배만큼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케인스 이론은 불황의 원인을 유효수요의 부족에 둔다. 다시 말하면 투자 결정은 대부분 기업이 갖고 있는 막연한 기대, 혹은 동물적 감각(animal spirit)을 기초로 하는데 기업이 미래에 대한 전망이 나쁘면 불황이 온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불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사람들의 심리에 달려 있다는 것으로 논리적이지 않다. 따라서 유휴자원에 대한 논리성 부족은 유휴자원에 바탕을 둔 정부지출의 승수효과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불황기 유휴자원의 존재는 오스트리안 경기순환이론으로 분명하게 설명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면 수익성이 없었던 장기 투자프로젝트가 갑자기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 기업들로 하여금 그 프로젝트를 실행하도록 한다. 그래서 소비와 투자가 증가해 일시적인 호황이 일어난다. 그러나 정부의 인위적인 금리인하는 소비자 저축이 늘어난 결과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실질적인 저축이 늘어나 생긴 금리인하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질적인 저축이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투자사업에 필요한 자원 부족이 발생한다. 결국 투자사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어 불황에 빠진다. 실업이 증가하고 유휴자원이 발생한다.

유휴자원의 발생은 정부의 인위적인 금리인하로 인한 잘못된 투자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왜곡한 상태에서 다시 지출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그 왜곡을 심화시킨다. 정부는 다른 사람의 돈으로 활동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정부 수입의 원천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제품을 팔아 얻는 이윤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거둬들이는 조세다. 그러므로 정부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원을 걷어 덜 선호되는 목적에 사용하면서 시장조정 과정을 왜곡시킨다. 따라서 정부의 지출행위가 많아질수록 시장조정 과정의 왜곡은 심해지고, 결국 경제를 쇠퇴시킨다. 유휴자원을 바탕으로 한 승수이론이 허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게다가 정부지출 증가가 증세에 의해 조달된다면 증세는 다른 부문에서의 지출을 감소시킨다. 마찬가지로 정부지출 증가가 차입으로 조달된다면 실질금리를 올려 다른 부문에서의 지출을 감소시킬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감소한다. 다시 말하면 정부지출을 늘린다고 해서 유효수요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라고 한다.

결국 정부지출을 늘려 승수효과에 따라 국민소득을 늘린다는 것은 소비와 민간투자가 변동이 없다는 것을 가정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케인스의 승수이론을 바탕으로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를 살리고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난센스다.

소비는 미덕, 저축은 악덕?
미래의 생산 늘리는 것은 소비 아닌 저축에 달려있어

케인스의 승수이론이 시사하는 점은 국민 경제 전체적으로 소비를 많이 하고 저축을 적게 할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케인스 이론에서 소비는 미덕이고 저축은 악덕이 된다. 과연 그런가.

먼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배가 좌초해 홀로 섬에서 살게 된 로빈슨 크루소의 경우를 보자. 크루소는 처음에 먹을 것을 해결하기 위해 손으로 물고기를 잡았지만 물고기 잡는 시간을 줄여 그물을 짰고,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여기서 물고기 잡는 시간을 줄여 그물을 짠 것은 귀중한 자원인 시간을 저축해 투자한 것이다. 저축과 투자를 통해 그는 그물이라는 자본재를 획득하고, 그 자본재를 사용함으로써 물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었다. 처음 섬에 발을 디뎠던 때와 비교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고 여가를 즐길 수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소비지출이 소비를 몇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생산을 야기하지는 않으며 미래의 생산을 증가시키는 것은 저축이라는 점이다.

투자지출이 전적으로 소비지출에 의존하는 케인스의 2단계 모형과 달리 현실에서는 어떤 재화든 그 생산과정은 적어도 3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자원의 일부가 소비되지 않고 저축돼야 하고, 여기에 노동과 토지와 같은 생산요소가 결합해 자본재가 생산된 다음 그 자본재로 최종재화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저축이 없다면 생산성이 높은 이런 생산양식을 갖출 수 없다. 저축이 증가해야 더 많은 자본재를 생산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늘어난 생산으로 더 많은 소비를 즐길 수 있다.저축이 경제에 나쁘다는 케인스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본재가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자본재는 저축 증가로부터 나온다. 소비가 미덕이 아니라 저축이 미덕이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것은 사라져야 할 미신이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