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롯데] 신동빈의 4년전 회장 승진 사실도 부인…'신격호 미스터리'

'신격호 영상' 논란…또 불거진 건강이상설

한국롯데·일본롯데 착각…말투도 다소 어눌
롯데 "고령의 총괄회장 이용해 사실 왜곡"

"장남 얼굴 못알아보고 '넌 누구냐 나가라' 호통"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이 2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동영상을 공개한 것은 아버지가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서 장남인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다시 한 번 알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 총괄회장이 직접 말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간 불거진 건강 이상설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도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발언 중 일부는 사실과 크게 달라 건강에 대한 의혹이 더욱 증폭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시선 아래로 향한 채 원고 읽어이날 공개된 동영상은 신 전 부회장 측이 촬영해 방송사에 제공한 것이다. 동영상 속 신 총괄회장은 녹색 깃의 티셔츠와 짙은 회색 재킷 차림에 안경을 쓴 모습으로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중간중간 말을 더듬는가 하면 일부 단어는 틀리게 말하기도 했다. 일본식 억양도 배어 나왔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세들의 경영권 분쟁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동영상이 2일 공개됐다. SBS뉴스 화면 캡처
신 총괄회장의 발언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신동빈을 한국 롯데 회장으로 임명한 적이 없다”고 말한 대목이다. 신 회장은 2011년 초 회장으로 취임해 이미 4년 반 동안 롯데그룹을 이끌었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지난 4년여간 회장직을 수행했는데 임명한 적조차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그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 총괄회장이 “신동빈을 한국 롯데홀딩스 대표로 임명한 적이 없다”고 밝힌 것도 논란을 낳고 있다. 롯데호텔의 최대 주주이면서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회사인 롯데홀딩스는 일본에 있는 기업이다. 한국엔 롯데홀딩스라는 회사가 없다. 롯데 관계자는 “단순 실수일 수도 있지만 판단력이 약해진 신 총괄회장이 누군가가 써 준 원고를 그대로 읽는 과정에서 혼동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와 관련해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을 못 알아봤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이 계열사 임원으로부터 경영 현황을 보고받는데 신 전 부회장이 들어오자 ‘넌 누구냐. 나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참석자들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동영상 통해 정통성 확보 의도

신 총괄회장의 발언은 그간 신 전 부회장이 해 온 주장과 일치한다. 신 총괄회장은 “(신 회장이) 롯데그룹을 키워 온 아버지인 나를 배제하려는 점을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신 회장이 지난달 28일 신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해임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는 신 전 부회장이 그간 방송 인터뷰를 통해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가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고 주장해 온 것과 같은 내용이다.신 총괄회장은 또 “나는 신동빈의 눈과 귀를 멀게 한 참모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신 총괄회장이 지난달 15일 한국 롯데 일부 임원들을 해임하라고 지시한 것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신 전 부회장이 점점 수위를 높이며 신 총괄회장의 발언을 공개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신 총괄회장의 서명이 담긴 지시서를 공개했고, 31일 육성 녹음을 방송사에 넘긴 데 이어 이날 동영상을 공개했다. 재계 관계자는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신 총괄회장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경영권 분쟁에서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신 회장 입국, 입장 밝힐 듯신 회장은 3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이다. 그는 경영권 분쟁이 표면화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6일 일본으로 출국한 뒤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 대비해 표 관리에 주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입국 후 공항에서 기자단의 몇 가지 질문에 답할 예정이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은 귀국 후 신 총괄회장을 찾아가 출장을 다녀온 것에 대해 여러 가지를 설명할 것”이라며 “산적한 계열사 업무를 챙기는 등 경영인으로서 행보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