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난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수단 출신 27세 청년이 탄 난민선은 지중해에서 침몰했다. 그는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형제와 친구들은 수장됐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그는 프랑스 북부의 칼레로 향했다. 최근 보름 동안에는 숲속에서 잠을 자며 새벽마다 목숨 건 탈출을 시도했다. 유로터널을 건너는 영국행 트럭이나 열차에 숨어 들어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벌써 10명이 사망했다. 그와 같은 ‘칼레의 난민’은 지금도 불어나고 있다.

올 들어 지중해를 건너던 난민 25만여명 중 2300여명이 숨졌다. 4월에 리비아 난민선 전복으로 800여명이 죽었고, 이달 200여명이 또 희생됐다. 지난해에도 3300여명이 죽었다. 그리스 쪽의 에게해 역시 ‘난민의 바다’로 변했다.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는 난민들을 감당할 수 없어 비명만 지르고 있다. 비유럽연합(EU) 소속의 세르비아 인근 헝가리 국경 난민까지 합치면 35만명이 넘는다.이들의 운명은 극적으로 바뀐다. 특정 국가의 영토 안으로 진입한 뒤 심사를 통해 난민으로 등록하고 체류자격을 얻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에 상륙한 난민들은 체류 여부 등록을 거쳐 독일 영국 등 다른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적과 돈, 종교에 따라 미래가 갈리기도 한다. 그리스는 지난 주말 코스 섬의 시리아 난민을 실어나르기 위해 3000석 규모의 여객선을 운항했다. 전쟁지역을 탈출한 이들은 정식으로 난민 등록 절차를 밟게 된다. 하지만 다른 국가에서 온 수천명은 그대로 섬에 남았다. 전쟁지역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돈의 힘도 작용한다. 최근 침몰한 배의 생존자들은 모두 비싼 자리를 산 위층 갑판 승객이었다.

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는 독일이다. 작년 EU로 유입된 62만여명 가운데 20만명 이상이 독일로 갔다. 최소한의 사회복지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독일행 난민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연초 30만명 선으로 예상했으나 80만명을 넘을 것으로 독일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EU 전체가 수용한 난민보다 많은 숫자다. 독일 정부로서는 곤혹스럽겠고, 난민들로서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우리에게도 난민이 있다. 해마다 1000~2000명의 탈북자가 들어온다. 벌써 2만8000명이 넘었다. 우리와 유엔, 미국 등은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들을 체포해 북으로 강제송환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탈북자를 돕고 한쪽에서는 잡아가두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니, 이들의 운명도 참 얄궂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