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를 눈에 담고 '천상의 화원'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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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E6
박병원 객원대기자의 프랑스 야생화 기행
안시~크레 드 샤티용~생 프랑수아 롱샴
풀밭 지천인 론알프스…형형색색 꽃 자생
길따라 펼쳐진 꽃밭…車 몰고 지나칠 수 없네
그르노블~라샹 라파엘~오베르뉴
샤르트뢰즈 자연공원의 용담 군락 '전율'
고색창연한 구시가지 거닐어 보는 것은 덤
프랑스에서 목축으로 먹고사는 곳, 풀밭이 지천인 곳은 동부의 론알프스 지역과 오베르뉴 지역이다. 여기에는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곳이 많다. 그 넓은 공원을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야생화 풍경이 제일 좋다는 한 곳씩을 골라 가보기로 했다.
부근에 타미에 수도원이 있는데 이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부근 길을 걸으면 많은 꽃을 볼 수 있다. 기념품 가게에는 온갖 종류의 베리로 담근 술을 팔고 있다. ‘수도원길’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성당은 수도원답게 소박했고 길가에 있는 성모상이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게 했다.
잔설과 어우러진 크로커스
프랑스어로 콜(col)은 좁아지는 부분을 뜻하는데 우리말로 바꾸면 고개(嶺·령)에 해당한다. 이곳에 봄을 알리는 꽃인 크로커스(crocus)가 만발해 있었다. 크로커스의 꽃말은 ‘청춘의 환희’다. 그 이름대로 들판에 활짝 핀 크로커스가 처음 눈에 띄었을 때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산 곳곳에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다시 남쪽으로 71㎞쯤 내려가니 콜 뒤 갈리비에에 도착했다. 이곳에 가려면 1차선 터널을 지나야 한다. 신호등에 따라 양방향 차량들이 교대로 통행하는 곳이다. 터널 남쪽에 휴게소와 기념품가게가 있어 여기서 잠시 쉬었다. 프랑스에서는 시골에 가면 콜라에 넣을 얼음이 없거나 있더라도 무척 아낀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얼음이 없다고 해서 가게 옆에 쌓인 눈을 컵에 담았다. 다 마실 때까지 거의 그대로 남은 눈얼음은 별미였다.
다음 목적지인 콜 뒤 로타레에 도착할 때까지 도저히 그냥 달릴 수가 없었다. 곳곳에 환상적인 꽃밭이 있고 비교적 차를 세울 만한 공간을 찾기도 쉬워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조용한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곳
2009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의 촬영지인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이 이곳에 있다. 수도원은 11세기에 브루노 성인(St. Bruno)이 창립한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본원이다. 이곳은 수도자들의 기도처로만 존재한다. 영화 제작진이 10여년에 걸친 설득 끝에 수도자들의 모습을 담아 세상에 담은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사들의 조용한 일상을 담고 있다. 제목처럼 대사가 거의 없고 성경 읽기, 기도, 예배, 식사 등으로 이뤄지는 수도사들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느린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영화로 바쁜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샤르트뢰즈 자연공원에서 만난 용담 군락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보는 꽃도 여럿 있었다. 트레킹을 해도 좋다. 관광안내소에서 주는 지도로는 부족하다. 이왕 걷는다면 제대로 된 지도를 사는 게 좋다. 7유로를 주고 산 지도에는 공원 전체의 트레킹 코스가 나와 있었다. 모두 돌려면 열흘이 있어도 모자랄 듯싶다.
야생화 트레킹 코스의 절경 속으로
라샹 라파엘에 가니 장이 섰다. 세계 모든 시장은 현지의 생활상을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웬만한 마을에는 주말마다 장이 선다. 과일, 빵, 치즈, 햄 등을 사기 좋다. 산을 헤매다 보면 밥 먹을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비상식량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 과일은 잘 상하지 않기 때문에 갖고 다니면 도움이 된다. 물은 항상 넉넉하게 싣고 다녀야 하며, 식당이 있는 경우라도 오후 2시 전에는 앉아서 주문하는 것이 안전하다. 마감시간이 되면 가차없이 영업을 중단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마을 앞에는 정상에 십자가 세 개가 서 있는 산이 있었다. 해발 1441m의 쉬크 드 몽티베르누다. 국립공원이나 자연공원 구역에 속하지 않지만 최고의 야생화 트레킹 코스라 해도 무방할 만큼 아름다웠다. 20가구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 너무 예뻐서 특히 그렇다.
부부가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와인을
일정 중 이틀은 그르노블에서 동쪽으로 280㎞ 떨어진 오베르뉴의 민박집에서 묵었다. 방은 세 개뿐이었다. 네덜란드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던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식전에 한 시간 반이나 와인을 같이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안주인이 아주 씩씩했다. 1주일 이상 밀린 빨래를 해주고, 뜰에 널어 말리고 반듯이 개어주기까지 했다. 세탁비는 10유로.
오베르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리브라두아-포레 지역 자연공원에서 동쪽 끝에 해당하는 콜 데 쉬페이르로 갔다. 멀리서 보고 풀이 무성하다고 그냥 떠났으면 후회할 뻔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토끼풀, 수선, 바람꽃, 베로니카, 범꼬리, 제비꽃, 벌노랑이, 물망초, 콩과의 넝쿨 등 다양한 식물이 공존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야생화는 그들의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야 모습을 드러낸다.
콜 데 쉬페이르로 가는 길에 있는 르 페리에는 수레국화의 천국이었다.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너비의 비포장 길을 따라 꽃이 피어 있으며 모든 꽃이 크고 싱싱해 보였다. 이 지역에 들른다면 칼로 유명한 티에르의 고색창연한 구시가지를 거닐어보는 것도 좋다.
여행 Tip
유럽에서는 큰 차를 몰고 다니면 주차가 어렵기 때문에 작은 차를 빌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가방을 실을 트렁크의 용적과 항상 산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경차는 권하기 어렵다. 힘 좋은 디젤 소형차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자동 변속기 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미리 알아보는 것이 현명하다.가끔 산악지역에는 전류가 흐르는 철사 울타리가 쳐져 있다. 방심하다 울타리 철사에 닿으면 상당한 전기충격을 받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그르노블=글·사진/박병원 객원 대기자·한국경총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