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폭탄 테러...가을 여는 명품 연극

국립극단 고전극 '아버지와 아들' vs 서울시극단 현대극 '나는 형제다'

'아버지와 아들'

내달 2일 명동예술극장서 개막…투르게네프의 동명소설 희곡화

'나는 형제다'

내달 4~20일 세종문화회관서…김광보 단장 부임 후 첫 연출
내달 2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아버지와 아들’.
한여름 비수기를 지나온 공연계가 9월에 접어들자마자 신작 경쟁에 나선다. 국립극단은 가을마당 첫 작품으로 러시아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의 대표작 ‘아버지와 아들’을 한국 초연한다. 서울시극단은 고연옥 작, 김광보 연출의 ‘나는 형제다’를 선보인다. 고전극과 현대극의 맞대결이다.

다음달 2~25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아버지와 아들’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로 꼽히는 투르게네프의 동명소설을 ‘아일랜드의 체호프’로 불리는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이 희곡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연극 ‘굿모닝 체홉’ ‘바냐 아저씨’ 등 체호프 연출로 이름이 난 이성열 극단 백수광부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원로배우 오영수 남명렬 유연수가 아버지 세대를, 차세대 간판 배우 윤정섭 이명행이 아들 세대를 연기한다.작품의 원제는 ‘아버지들과 아들들(Fathers and Sons)’이지만 두 세대의 대립과 갈등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아버지와 아들’로 번역했다. 1859년 농노해방을 앞두고 러시아 사회가 크게 동요하던 시대가 배경이다. 사실주의 작가인 투르게네프는 ‘관념과 이상’의 세대인 아버지와 ‘행동과 혁명’의 세대인 아들의 갈등을 러시아 중부의 서정적 분위기 속에서 생생하게 묘사했다.

대학을 졸업한 아르카디는 진보적인 사상과 열정을 지닌 친구 바자로프와 함께 아버지 니콜라이와 큰아버지 파벨이 사는 고향 농장에 온다. 일하지 않고 책이나 읽으며 세월을 보내는 귀족 출신 이상주의자인 파벨과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인 바자로프는 사사건건 부딪치며 대립한다. 아르카디와 바자로프를 환영하는 파티에 매력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안나 일행이 등장하면서 평범하고 조용했던 러시아 농가에서 엇갈린 사랑이 시작된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 이념 갈등이 극렬한 시대상을 묘사한다는 이유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연극은 인물 간의 엇갈린 사랑과 세대 간 갈등에 더 집중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 연출은 “거의 모든 장면에 두 세대의 다툼이 등장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가 닮음을 인정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표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내달 4~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할 연극 ‘나는 형제다’.
다음달 4~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서 펼쳐지는 서울시극단의 ‘나는 형제다’는 김광보 연출이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부임한 뒤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2013년 보스턴마라톤대회 폭탄테러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내 이름은 강’ ‘내 심장을 쏴라’ 등 김 연출과 17편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극작가 고연옥의 새 희곡이다. ‘사회의 기둥들’ ‘엠 버터플라이’ 등의 작품에서 김 연출과 함께한 배우 이승주가 형 역을, 서울시극단 연수단원 장석환이 동생 역을 맡는다.

이 연극은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형제의 성장과 실패를 통해 약자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그린다. 어려서부터 한몸처럼 붙어 다닌 형제는 사회에 이바지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평범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삶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점차 사회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다. 형은 세상 전체를 벌하기 위해 극장에 폭탄을 설치하고, 자신이 이 세상의 ‘선(善)’을 회복하기 위한 테러리스트라고 선언한다.

고 작가는 “우리 사회는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폭탄을 안고 있고 수많은 테러에 노출돼 있다”며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무시하고 배척하고 절대로 같이 살 수 없다며 악마화한다”고 지적했다.형식이 새롭다. 영화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스크린 안과 밖으로 나뉜다. 형제의 성장 과정과 일상은 단편영화처럼 스크린 속 영상으로 펼쳐지고, 두 사람의 현재 모습은 스크린 밖 무대에서 그려진다. 범행 장소는 마라톤대회가 아니라 영화관이다. 고 작가는 “그들도 영화를 보며 여가를 즐겼고, 시간이 갈수록 영화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