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북한과의 치킨게임서 이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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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벼랑끝 전술에 휘둘려온 남한제임스 딘과 내털리 우드가 주연한 1955년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을 기억하는가.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올드팬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도 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1950년대 방황하는 미국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들의 자기파괴적 행동의 단적인 예로 누가 ‘치킨(겁쟁이)’인지 가리기 위해 벌이는 ‘치킨 게임’을 보여준다. 일정한 거리에서 두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데 겁을 먹고 먼저 자동차의 핸들을 꺾는 사람은 겁쟁이의 오명을 쓰게 된다. 물론 누구도 그만두지 않으면 자동차가 정면 충돌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맞는다.
파국 피하기 위한 미온적 대응 탓
무력 사용 불사한다는 맞대응 원칙
일관되게 보여야 도발 악순환 끊어"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yjlee@khu.ac.kr >
굳이 먼지 풀풀 날리는 옛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동안 북한의 각종 도발과 이에 대한 남한의 대응이 이 치킨 게임과 닮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걸핏하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시로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는 것도 모자라 계획적으로 우리의 경비정을 격침한 일도 있었다. 흔히 연평해전이라고 불리지만 아군은 이상한 교전수칙과 수상한 지시에 사실상 손발이 묶여 제대로 대응도 못한 해전 아닌 해전이었다. 천안함을 폭침한 것도 북한의 소행이었다고 국제합동조사단은 결론지었다. 이후에도 북한은 아무런 도발도 없는 상태에서 연평도를 포격하는 등 묵과할 수 없는 군사적 도발을 자행했다. 이런 북한의 도발에 대해 제2연평해전처럼 단호하게 대응한 예도 있지만 화해협력의 분위기를 손상시킬 수 없다든지 파국만은 피해야 한다든지 하는 명분 아래 미온적인 대응으로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치킨 게임에서 이기는 길은 출발에 앞서 운전대를 뽑아버린다든지 해서 이쪽에서는 중도에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대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박근혜 정부 이전까지 한국은 이 점에서 실패했다. 오히려 흔히 ‘벼랑 끝 전술’로 불리는 북한의 ‘운전대 뽑기’에 우리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도발이 거듭된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남북한의 치킨 게임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우리 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고조된 남북의 긴장관계가 지난 3일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극적으로 해소됐다. 이산가족 상봉과 당국자 회담 같은 추가적인 소득도 있었다.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면서 치킨 게임을 벌여온 북한이 먼저 접촉을 제의한 것 자체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래 일관되게 견지한 ‘팃포탯(tit-for-tat) 전략’이 맺은 작지 않은 결실이다. 팃포탯은 협력을 강제할 정부가 없는 국제관계에서도 장기적으로 상대방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전략으로, 일단 협력을 제안하고 그 이후에는 상대가 취한 행동을 그대로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상대가 협력하면 협력을, 상대가 도발하면 상응하는 응징을 하는 식이다. 이러다 보면 상대도 학습을 하게 된다.박근혜 정부는 ‘드레스덴 선언’ 이래 북한이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 협력하면 북한의 개발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한편 도발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혀 왔다. 사회 일각에서 북한에 좀 더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요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한이 먼저 그동안의 각종 도발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번 접촉과 그 성과는 정부의 이런 원칙 있는 대북 접근법이 옳았다는 걸 보여준다.
물론 이번 접촉으로 남북관계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보는 것은 성급하다. 뒤로 호박씨를 깔 수도 있고 이 국면이 지나가면 다시 도발을 통해 우리의 의지를 시험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무력 사용도 불사할 때에만 더 큰 무력을 사용해야 하는 파국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화는 구걸할 수도 돈으로 살 수도 없는 것이다. 이 경우 상대는 더욱 무리한 요구를 하게 마련이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