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도진 기업인 줄소환…국회 불치병인가

이쯤 되면 불치병이라고 봐야겠다. 다음달 10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기업인들을 줄소환하는 ‘국감병(病)’이 또 도졌다. 국회 16개 상임위원회 중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만 기업인 150여명을 증인으로 부를 것이라고 한다. 다른 상임위까지 합치면 족히 수백명은 될 듯싶다. 바쁜 기업인들을 불러다 면박 주고, 호통치고, 망신 주는 일그러진 악습은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될 게 뻔하다. 이런 권한남용에 비난여론이 거세도 눈 감고 귀 막은 국회의 전형적인 ‘갑질’이다.

국정감사는 국정 전반을 감시·견제하라고 입법부에 부여한 권한이다. 그 대상은 정부의 국정 수행, 예산 집행 등 말 그대로 ‘국정’이다. 피감기관은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지 시장 감시를 받는 민간 기업이 아니다. 그런데도 증인·참고인 제도를 악용해 기업인들을 불러다 군기잡는 게 고질병이 돼 버렸다. 게다가 올해 피감기관 수는 800곳에 육박해 사상 최대인 데다 메르스 사태 등 현안도 수두룩하다. 고작 열흘 남짓 동안 국정 감사나 제대로 할지 의문이다.정작 국감장에 기업인을 불러다 놓고 벌이는 행태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몇 시간씩 증인석에 앉혀놓고 굴욕감을 주거나 질문에 제대로 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윽박지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장시간 대기만 시켜놓고 끝내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질문도 원님 재판하듯 ‘네가 네 죄를 알렷다’ 수준이니 전문성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렵다. 실무 전문가로 충분한 일도 무조건 그룹 총수나 CEO를 호출한다. 거부하면 국회를 무시한다며 본때를 보이겠다고 겁부터 준다.

가뜩이나 대내외 경제여건이 살얼음판이고 기업들은 실적 부진, 경쟁력 저하로 피가 마르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국감까지 기업의 리스크가 돼 버렸다. 오죽하면 대형 로펌들이 국감 때마다 ‘증인 컨설팅’ 사업으로 호황을 누릴 정도다. 기업인이 국회에 가서 의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나라가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의원들의 청탁 비리, 뇌물 수수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4대 개혁보다 더 시급한 것이 정치개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