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맥 빠진 '모뉴엘 사건' 재판

법조 산책

혈세 3400억 걸린 재판
피고인측 일방적 진술로 진행

검찰, 소극적 추궁에 그쳐
주요 사건엔 수사검사 나와야
지난달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424호에서 ‘모뉴엘 사기 대출’ 사건의 7차 공판이 열렸다. 모뉴엘의 박홍석 대표, 부사장 신모씨, 재무이사 강모씨 등 세 명이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섰다. 모뉴엘은 2009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홈시어터 PC 가격을 부풀리거나 물량을 가공해 1조2000여억원의 허위 수출입 신고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 실적을 근거로 시중은행 10곳에서 3조2000억원대의 사기 대출을 받았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방청객들은 검사와 피고인 측 변호인 간 치열한 법정 다툼을 예상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보증을 선 3482억원에다 국내 은행들이 모뉴엘에 대출했다 받지 못한 돈을 합하면 6700여억원에 이른다. 막대한 돈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라져버린 초유의 사태 아닌가.예상은 빗나갔다. 팽팽한 공방은 온데간데없고, 공판은 피고인 측 변호인들의 일방적 독주로 진행됐다. 양측의 변론을 듣고 있으니 맥이 탁 풀려버렸다. 변호인은 피고인 심문을 통해 박 대표가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해 대출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상환하지 못한 6700여억원은 법인세, 직원 급여, 제품 개발비, 광고비, 설립 운영비 등으로 썼지 박 대표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나중엔 재판을 맡은 김동아 부장판사가 “같은 내용을 계속 중복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미 잘못을 시인한 박 대표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경영 상황을 참작해 달라고 주장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검찰의 반대심문은 무성의에 가까웠다. 재무이사 강씨를 제외하곤 박 대표 등 나머지 피고인 2명에겐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검사가 모뉴엘 사건을 직접 수사한 검사가 아니라는 한계는 있지만 그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는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검찰 측에 “수사검사가 직접 나올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짐작은 된다.무역보험공사와 국책은행 등이 떼인 돈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왔다. 혈세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검찰에서 수사검사가 직접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범죄 혐의를 추궁했어야 했다. 이제 판단은 재판부의 몫으로 남았다.

김인선 법조팀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