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65년 한 풀기엔 부족한 이산상봉

김대훈 정치부 기자 daepun@hankyung.com
9일 오후 서울 남산동 대한적십자사(한적) 본사에서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5배수 추첨 현장. 이창용 할아버지(93)는 숨을 죽이고 추첨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만나도 무슨 할 말이 있겠어…”라며 말을 흐렸다.

평양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1951년 1·4후퇴 때 ‘장정은 잠시 대동강 남쪽으로 피해 있으라’는 국군 지시에 따라 부인과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후 가족과 생이별을 한 이 할아버지는 경남 진주에서 터를 잡고 조갑순 할머니(81)를 만나 해로했다.조 할머니는 “집에서 명절 차례는커녕 음식도 하지 않는다”며 “(가족들의) 제삿날이라도 알면 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아들도 70은 넘었을 것”이라고 말한 할아버지 말에 할머니는 “(북쪽 아들을 만난다면) 내 자식으로 품어야지. 영감이 고생을 많이 했다. 요즘은 술로만 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8월 기준으로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6만6292명. 1차 후보자 500명 안에 들더라도, 2배수(200명) 선정 과정과 북한과의 명단 교환을 거쳐야 최종 상봉 대상자 100인에 들 수 있다.

추첨 프로그램이 2분여간 돌아간 뒤 결과가 나왔다. 이 할아버지의 바람은 이번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직접 추첨 현장을 방문한 10여명의 이산가족 모두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이산가족 친척을 대신해 추첨장을 찾은 김형배 씨(43)는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아쉽지만 안 됐어요. 나이 많으신 분 위주로 됐나 봅니다”라고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김성주 한적 총재는 현장을 방문한 이산가족들의 손을 잡고 “앞으로 더 좋은 방안을 마련할 테니, 꼭 건강하셔야 합니다”라고 위로했다.

이번에도 ‘기회’를 놓친 이종우 할아버지(81)는 “처음에는 나보다 연세가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 했는데, 이젠 내가 나이가 많아졌다”며 “1년에 한두 번 100명씩 언제 모두 만나겠나. 한 번에 몇 백명씩은 해야지”라고 말했다.

김대훈 정치부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