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산가족 상봉, 10·10 행사로 방해해선 안돼

"20개월 만에 재개되는 이산 상봉
정치·군사적 도발로 훼방 안돼
남북관계 선순환의 계기 삼아야"

유호열 < 고려대 교수·북한학과 yoohy@korea.com >
올 추석을 계기로 남북한 이산가족이 다음달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규모와 방식은 예전처럼 남북 100명씩, 2박3일 일정으로 상봉 행사가 진행된다. 지난해 2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뒤 20개월 만에 성사되는 것이며, ‘8·25합의’ 사항의 첫 번째 결실이 되는 셈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기존 방식과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규모나 성격도 예전과 같다. 우리 측 상봉 신청자 명단에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50명 추가해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확인된 인원만큼 추가로 상봉할 수 있게 된 것은 새롭고 진일보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 재개는 남북 고위급접촉에서 합의한 사항이고, 결과적으로 기존 방식대로 추진하기로 결정된 만큼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40일 동안 한반도 정세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다. 이번 적십자 실무대표들이 상봉사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만 24시간 동안 난항을 겪은 데는 상봉 일자에 대한 남북한의 입장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추석을 계기로 상봉하는 만큼 최소한의 행정적 준비 기간을 감안하더라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었다. 북측은 추석 휴일과 함께 10월10일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 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10월 중순 이후로 상봉 날짜를 늦춰잡을 것을 고집했다고 한다.핵심 문제는 북한이 노동당 창당 70주년을 기념해 국제사회가 금하고 있는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나 4차 핵실험 강행 등 도발 행위를 할 경우, 임박한 이산가족 상봉이 예정대로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우리로서도 가급적 10월10일 이전에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측의 주장을 수용해 20일부터 진행하게 됐으니 결국 10월10일 행사가 이산가족 상봉의 성사를 좌우하게 됐다. 물론 이 경우에도 북한이 남북관계의 선순환적 개선이나 국제사회의 우려와 이목을 감안해 예정보다 완화된 수준에서 창건기념행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긴장을 완화하는 조치가 북한으로서도 나쁜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 일정을 핑계로 창건기념행사를 조촐히 치를 명분을 찾고 향후 남북 간 교류협력의 실리를 챙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상봉 재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안한 이산가족신청자 명단 교환과 조속한 시일 내에 전면적인 생사확인을 실시하는 방안을 비롯해 상봉의 정례화, 상봉 규모의 확대와 서신·화상대화 및 상호 방문 등 다양한 의제들을 제기했을 것이다. 반면 북측은 협상에 임하면서 기존 방식대로 이산가족상봉을 재개하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 시기를 확정하는 문제 이외에는 논의할 계획도 재량권도 부여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만큼 북한사회가 경직돼 있으며, 이산가족문제같이 체제 생존에 직결된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해 설득해나갈 수밖에 없다.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적 사업인 동시에 남북관계의 근본 장애인 상호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다. 8·25합의는 남북한 최고위층의 재가를 받아 이뤄진 약속이지만 이행하고 실천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산가족 상봉이 순조롭게 재개되고, 상봉 규모와 방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면 남북 간 현안인 금강산 관광재개 문제와 5·24조치 해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원만한 해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유호열 < 고려대 교수·북한학과 yoohy@kore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