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손숙 "무대서 겨룰 수 있어 행복…우리는 전우 같은 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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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손숙, 연극 '키 큰 세 여자'로 7년 만에 호흡한국 연극계의 대모인 박정자(73)와 손숙(71)이 오랜만에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춘다. 국립극단 제작으로 다음달 3~25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키 큰 세 여자’에서다. 2008년 연극 ‘침향’에 함께 출연한 이후 7년 만이다. 서울 대학로 연습실에서 두 배우를 만났다.
“우리 두 사람은 전우야, 전우. 무대에서 전쟁을 제대로 잘 치르려면 옆에 있는 전우들이 잘해야 하는데, 무대에서 겨룰 대상이 있는 것은 참 큰 행운이에요.”(박정자)“한창 힘들 때 일은 많고 배고프기만 하다며 연극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어요. 그때마다 박정자 선배가 저랑 씨름을 벌였지요. 손숙은 연극이 있기에 손숙일 수 있다고 붙들어줬죠. 힘들 때 투정할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손숙)
미국 작가 에드워드 올비가 쓴 ‘키 큰 세 여자’는 고집 세고 까다로운 90대 노인의 인생을 재치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귀족적이고 자존심 강한 90대 노인 A, 50대 중년 간병인 B, 20대 젊은 재산관리인 C를 통해 다사다난한 한 여성의 인생을 돌아본다. 박씨는 노인 A, 손씨는 간병인 B를 맡았다. 20대 C는 국립극단 시즌단원인 김수연 씨가 연기한다.
두 사람은 “배우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요즘 매일 7~8시간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는 이유다. 박씨는 “젊어서 이렇게 했으면 사법고시도 합격하겠다는 얘기를 우리 둘이 한다”며 웃었다. 그는 “역할에 이름이 없고 그냥 A, B, C인데, 그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주인공은 여성이지만 결국 ‘한 인생의 해부학’ 같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50대를 연기하는 손씨는 “극중에 ‘인생을 산으로 비교했을 때 쉰이라는 숫자는 그 정점에 있다’는 대사가 있는데, 쉰 살이었을 때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며 “50세가 되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 많아진다는 걸 그땐 몰랐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박씨는 세 여성이 서 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그는 “C를 보면 ‘참 젊구나…우리도 젊었을 땐 저랬겠지’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젊은 시절로 가고 싶지는 않아요. 이 작품에서도 삶이 다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행복한 순간은 ‘마지막 죽는 순간’이라고 말하죠. ‘다 끝난 순간’ ‘멈추는 순간’ ‘멈출 수 있게 되는 순간’ 이게 마지막 대사예요. 이 대사를 들은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떤 감정을 가질지 궁금해지네요.”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