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도 이제 익숙한 민통선 마을 '해마루촌'…불편해도 고향 못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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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비옥해 콩 농사로 수익…젊은 층은 시내 직장으로 출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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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에서는 작전상 잠깐 나가 있으라고만 했다. 그 말을 믿고 금방 돌아올 것이란 생각에 숟가락 하나 챙기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다.” 마을 주민 이백형 씨는 1951년 11월 당시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민통선 내 장단 지역을 고향으로 둔 다른 주민들도 하나같이 똑같다. 남쪽의 경계 안에 터 잡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비무장지대(DMZ)와 민통선이라는 군사적 통제에 막혀 전쟁 이후 50여 년을 실향민으로 지내야 했다. 통일이 돼야만 고향을 찾을 수 있는 다른 실향민들과 해마루촌 주민들의 분명한 차이다. 해마루촌은 6·25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주민들이 50년 만에 되돌아온 고향이다. 입주 당시만 해도 해마루촌은 북한에 빼앗긴 땅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동파리 수복마을이라고 불렸다.
해마루촌에서는 20여 가구가 농사로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전체 주민 중 30%에 가까운 수치다. 이 밖에 시내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주민은 15가구(젊은층 중심), 주말에만 민통선에 들어와 농지를 관리하는 가구도 15가구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사 작물로는 콩의 인기가 높았다. 조 이장은 “해마루촌은 토지가 오염되지 않고 비옥해 콩 재배에 안정맞춤”이라며 “해마루촌에서 수확한 콩으로 만든 콩국수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마루촌표 콩국수의 맛을 본 결과 일반 콩국수에 비해 진하고 고소한 맛이 강했다.
조 이장은 또한 콩 농사의 비중이 높은 이유가 “콩이 다른 농작물보다 재배하기 쉽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농사를 짓는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라는 게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면 농사 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일각에서는 높은 수익을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다. 불편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는 민통선 생활을 계속하는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수익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마루촌 주민들은 농사를 지어 큰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조 이장의 말에 따르면 해마루촌 주민들은 평균 1만6525~3만3050㎡(5000~1만 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콩 농사 연평균 수익은 3.3㎡당 3000원꼴이란다. 그러면 3만3050㎡의 토지를 소유한 주민은 연 4000만 원의 수익을 얻게 되는데 여기서 농약 및 수확 비용 1500만 원을 제외하면 순수익은 2500만 원에 불과하다. 이는 농기구 등에 사용되는 전기료를 계산하지 않은 수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막상 손에 들어오는 돈은 월 200만 원도 채 안 된다. 부부 두 사람이 모두 매달려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해도 생활이 빠듯할 수밖에 없다며 푸념하는 조 이장이다. 해마루촌 주민 윤옥보 씨는 “겨울에 할 일을 찾아야만 하는데 관광객이 더 늘어나 콩국수 전문점 등 근린생활시설들이 마을에 추가로 조성되면 일거리가 많아질 수 있다”며 “이를 위한 해마루촌 부지 용도 변경(주거 용지→근린생활용지)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 BUSINESS 1032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