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선율 풀어낸 '7인7색 몸짓'…열정적 앙상블에 음악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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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9일 개막하는 현대무용 '푸가' 연습실 가보니…바흐의 ‘푸가의 기법’ 중 콘트라푼크투스 5번이 흐르자 두 남녀 무용수가 2인무(파드되)를 추기 시작했다.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엄재용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다. 화려한 발레복 대신 몸에 착 달라붙은 검은색 의상을 입은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회전하고 함께 바닥을 구르다가 한쪽 다리를 뒤로 뻗고 외발로 서는 클래식 발레의 아라베스크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다음달 9~11일 공연하는 현대무용 프로젝트 ‘푸가’ 공연 연습이 한창인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리허설룸. 한국 무용계에선 좀처럼 볼 수 없던 장면이 펼쳐졌다. 국내 양대 발레단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들이 호흡을 맞춰 2인무를 추는 것은 이례적이다. 각 발레단에서 15년 이상 활동한 베테랑인 이들이 함께 춤을 추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무용수는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제작한 LG아트센터와 작품을 안무한 정영두 씨의 ‘러브콜’에 기꺼이 응했다.이 작품은 바흐의 다양한 푸가 음악을 무용수 일곱 명의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김지영 엄재용 윤전일 등 발레 무용수 세 명과 최용승 김지혜 하미라 도황주 등 현대무용수 네 명이 1인무와 2인무, 3인무, 7인무 등 다양한 조합으로 푸가의 몸짓을 펼쳐낸다.
안무가 정씨는 “푸가는 각각의 성부가 일정한 규칙 하에 반복되고 변화하며 어우러지는 다성음악”이라며 “각기 다른 장르의 무용수가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한 무대에서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절한 음악”이라고 설명했다.이번 무대에서 처음으로 현대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김지영은 “이번 작품의 움직임은 억압된 몸짓 안에서 자유로움을 표현해야 한다”며 “발레도 현대무용도 아닌 완전히 다른 장르”라고 설명했다. 엄재용은 “평소에도 몸을 자유롭게 쓰는 현대무용에 관심이 많았다”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작품은 바흐의 음악과 잘 어울리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뒀다. 클래식 발레나 현대무용 중 어느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는다. 프랑스 리옹 국립무용원 출신인 김지혜는 “현대무용과 클래식 발레는 호흡을 쓰는 방법과 무게중심의 위치가 서로 달라 같은 동작을 해도 다른 느낌이 난다”며 “다른 무용수들과 협업하며 중간점을 찾는 작업이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설명했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바흐의 푸가와 비슷한 점이 있다. 각각 독무를 추는 김지영과 케이블채널의 춤 경연 프로그램 ‘댄싱9’으로 잘 알려진 발레리노 윤전일의 무대도 한 명을 부각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도록 구성됐다. 2인무와 3인무에 이어지는 마지막 무대에서는 무용수 일곱 명이 모두 무대에 올라 전체 앙상블 무대를 선보인다.정씨는 “발레와 현대무용이라는 두 가지 다른 움직임이 한 무대에서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며 “움직임에서 음악이 보이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LG아트센터 초연에 이어 다음달 14일 통영국제음악당, 23~24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으로 이어진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