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절약의 역설

불안한 경제환경 지갑 닫은 사람들
경제엔진 돌릴 연료공급 끊어진 셈
내수 늘릴 방법 찾아야 경제 살아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가끔 지인들에게 밥을 살 때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누구든 돈을 써야 경기가 살아나는 법이 아니냐고. 더 나아가 “내 ‘호주머니 경제’가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경기를 살리려고 한다”는 허세 섞인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정말 최근에는 그렇게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국내 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소비여력이 충분한 소비자들조차 100세 시대에 저금리로 살아가야 한다는 뜬금없는 불안감에 지갑을 닫고 있다. 매번 새로운 근거의 위기설도 난무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9월 기준금리는 동결했지만 그 이유가 된 중국 리스크가 다시 불확실성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그 연쇄반응으로 신흥국 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다.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10일 브라질 국가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B+’로 떨어뜨렸고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급락했다. 또 다른 신흥국인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비슷한 처지로 불안에 떨며 통화가치 하락세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올 상반기 세계 교역량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1999년 이후 최대폭으로 감소했다.한국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외 경제 전망 전문기관들은 올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대 초반으로까지 낮추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의 자기실현적 기대가 작용하는지 한국의 수출이 예상보다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당장 올 한 해 수출은 지난해보다 4~6% 줄어들 것으로 연구기관들은 전망한다. 지난 8월의 수출액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14.7%나 급감하면서 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시인인 버나드 맨더빌(1670~1733)이 의학공부를 하고 영국으로 이주해 살면서 당시 영국 사회를 풍자한 시 ‘꿀벌의 우화’를 읽는 듯한 요즘 경제상황이다. 시의 내용은 이렇다. 옛날 옛적에 번성한 꿀벌왕국이 있었다. 여왕벌과 귀족벌들은 주지육림에 빠져 연일 연회를 열고 사치를 일삼았다. 연회를 열기 위해 빚까지 내서 물건을 사들이며 흥청망청 살았다. 어느 날 대단한 고승 꿀벌이 나타나 왕국의 타락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고승 꿀벌의 꾸짖음이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는 지라 모든 꿀벌들은 잘못을 회계하고 검소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맹세했다. 왕족과 귀족 꿀벌은 당장 궁전 안에 있는 호화로운 사치품을 모두 팔아 빚을 갚고 소박하게 살기 시작했다. 이후 꿀벌왕국은 어떻게 됐을까. 검소하고 현명한 왕이 다스리는 꿀벌왕국은 오히려 불경기가 닥치면서 실업 꿀벌이 늘고 생활이 더 비참해졌다. 맨더빌은 이 시를 통해 17세기 영국의 사회통념에 반해 “이기심이야말로 국가의 부를 창출해내며 경제에 활력을 주는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은 정교한 이론이 아니고 당시의 도덕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거스르는 것이어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불꽃 튀는 논쟁의 대상이 됐다. 나중에 이 우화는 이유야 어찌됐건 민간소비가 부진하고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경기를 살리기 위한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유명한 경제이론으로 발전했다.

그동안 정부는 고용률을 끌어올리고 투자를 늘려 생산성을 제고하면서 출산율을 높이는 종합적이고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경제는 점점 저(低)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서비스산업으로 수요를 창출하고 내수를 활성화함으로써 성장력을 복원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집중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맨더빌이 풍자한 영국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한국은 또 다른 차원에서 ‘한국판 꿀벌왕국의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300년 전처럼 부자의 사치가 아니라 중산층의 호주머니 경제를 자극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유효수요를 끌어내야 한다. 불꽃 튀는 논쟁을 통해서라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현대판 맨더빌의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방법을 찾아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