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시카고와 압구정동 오가며 바라본 '한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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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쿨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2012년 7월 발표 직후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기쁘기에 앞서 놀랍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제조업 강국으로만 이름을 알렸던 한국에서 태어난 대중가요가 세계 주요 차트 순위를 휩쓸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모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해서였다.
유니 홍 지음 / 정미현 옮김 / 원더박스 / 320쪽 / 1만4800원
이제 ‘한류’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더 이상 자위적인 어휘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K팝을 필두로 한 드라마 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의 국제적 위상 변화는 극적이기까지 하다.하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한 느낌이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계에선 국산 영화가 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스크린쿼터’가 필수로 여겨졌다. 싸이의 성공 전까지 ‘원더걸스’ 등 K팝 가수들의 해외 진출 시도가 이어졌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국이 갑작스레 대중문화 수출국으로 변모한 까닭에 대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의아하게 여기는 이유다.
파이낸셜타임스에 칼럼을 쓰는 유니 홍은 미국 시카고에서 유년 시절을, 서울 압구정동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저널리스트다.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외부인의 시각을 갖췄다. 그가 내·외국인으로서의 정서를 두루 반영해 세계 대중문화계 ‘신데렐라’로 급부상한 한국에 대해 조명한 책이 《코리안 쿨》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문화콘텐츠계 인사 인터뷰, 르포를 통해 한국 대중문화가 성장한 모습을 살핀다.
K팝 스타들이 ‘제조’되는 과정은 서구 언론들로부터 ‘현대판 노예제’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엄격하다. 기획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해당 문화권 멤버를 끼워 넣고 선발한 연습생을 7~13년간 키워낸다. 유니 홍은 대형 연예기획사의 스타 육성 시스템을 자연스레 밴드를 꾸리는 문화가 형성될 시간이 길지 않았던 한국에서 나타난 특수한 문화로 본다.싸이는 ‘아웃라이어(이례적 현상)’지만 영화와 드라마, K팝과 공연 등 문화콘텐츠 전반에 걸쳐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조명한 것도 흥미롭다.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장 시절 SM엔터테인먼트의 K팝 콘서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젊은 프랑스인을 동원해 11개 도시에서 플래시몹(불특정 다수인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벌이도록 했다. 기대 이상의 K팝 팬들이 몰리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100% 자발적 쇼는 아니었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 단기간 큰 폭으로 변화한 한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점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유니 홍은 예일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지냈다. 청소년기를 보낸 한국의 1980~1990년대와 최근의 기억을 단편처럼 갖고 있다. 외제 학용품을 규제하고 두발 단속을 하던 30여년 전과 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이 된 최근의 한국을 대조해가며 역동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의 성장을 꾸준히 지켜보지 않은 점은 한계로도 작용한다. 내·외부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췄다고는 하지만 무게중심은 바깥에 쏠려 있다. 오리엔탈리즘을 연상시키는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저자는 한국인 저력의 원인으로 독특한 ‘한’의 정서를 언급한다. 얼마나 많은 대중문화 스타가 전통적인 한의 정서에 기반해 실력을 갈고 닦는지는 입증하기 어렵다.한국인을 플라톤이 의도한 의미의 국민으로 단정짓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주변인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에 기여한다고 믿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엄밀한 인과관계 해석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한국 문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국내외 현상을 살필 수 있는 보고서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