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길은 너를 찾아 헤맨 지 너무도 오래…아! 일자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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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울리는 노조…청년 백수의 '타는 목마름'지난 8월 서울의 한 명문대학을 졸업한 이모씨(29). 이씨가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해 입사원서를 낸 회사는 무려 50여곳에 이른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죄다 원서를 냈다. 취업을 위해 1년간 졸업유예를 했기 때문에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는 자기소개서를 썼다. 몸은 피곤했지만 몇 개월 뒤면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자소서를 열심히 작성했다. 하지만 결과는 50전 50패였다.
1980년대 청년들 '민주화' 외치며 거리 메웠는데
2015년 청년들 '일자리' 외치며 채용설명회 몰려
민주화 이후 힘 커진 노조는 청년취업 '장벽'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장학금을 받기 위해 대학 생활의 낭만은 포기하며 살았다. 하숙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영화관, 택배사, 언론사 인턴 등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취업 낙오자라니….’ 이씨는 현실을 인정하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지난 추석 때는 고향에도 못 내려갔다.3년째 취업준비생인 서모씨(28)는 극심한 스트레스 탓에 최근 ‘취업병’을 얻었다. 중견기업으로 눈높이를 낮춰 어렵게 잡은 최종 면접을 앞두고 안면마비 증세가 나타나 면접장에 가지도 못했다. 졸업 후 취직을 못해 부모님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인데, 병원비까지 부담을 지워야 하는 신세가 고달프기만 하다.
지난해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54.8%였다. 대졸자의 절반 가까이가 사회 진입 단계부터 ‘낙오자’로 출발하는 셈이다. 3포세대, 5포세대를 넘어 N포세대로 불리는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면서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분노와 눈물이 가득 차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청년층의 실업률은 10~11% 수준이다. 실업 통계에 안 잡히는 구직 포기자까지 감안하면 15%를 넘을 것이란 게 정부 추산이다. 청년 실업률 두 자릿수는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시점을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 당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학생들의 관심은 온통 민주화였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때는 모두가 거리로 뛰어나갔다.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르며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러면서도 한쪽에는 안도와 희망이 있었다. 경제는 고속성장을 했고, 일자리도 부족하지 않았다. 4년 내내 도서관 한 번 가지 않고도 졸업만 하면 웬만한 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당시 대졸자 취업률은 70~80%대로 지금보다 20~30%포인트 높았다.반면 2015년 청년 세대의 현실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홍균 롯데면세점 대표는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를 가득 메웠던 1980년대와 달리 지금 대학생들은 취업설명회가 열리는 곳마다 구름처럼 몰린다”며 “일자리가 청년층의 최대 관심사이자 삶의 목표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30년의 간극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대학 졸업생 숫자는 연간 10만명 선에서 지금은 35만명 수준으로 세 배 이상 늘었다. 1980년대 이후 대학진학률이 급격히 높아진 것이 요인이다. 반면 경제 성장 속도가 느려지면서 일자리는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 실업난을 키운 근본 요인은 다른 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1980년대 후반 민주화 흐름에 따라 노동운동이 크게 확산됐고, 이를 계기로 노동법제가 기득권 근로자에게 크게 유리하게 바뀐 것이 노동시장 신규 진입을 막는 구조적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특히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결성된 뒤 전국 단위로 세를 합친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있다”고 지적했다.고임금을 받으면서 해고는 원천적으로 막고 정년까지 보장받는 것도 부족해 자녀에게 일자리 대물림까지 하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가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청년 실업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청년층 취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는 질문에 2030세대의 57%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