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향기] 저고리의 옷고름을 떼고…한복, 세계인의 드레스로 나빌레라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서울DDP'바람, 바램展'
“나는 아름다움이 지닌 보편성과 공감성의 힘을 믿는다. 한국 여인에게 아름다운 옷은 세상 모든 여인에게도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한국 전통의상에 머물러 있던 한복에 디자인의 개념을 도입해 세계가 주목하는 옷으로 끌어올린 주인공.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파리 오트쿠튀르 무대에 한복을 올리며 명실공히 한복의 세계화를 선도한 인물. 국내 최정상 한복 디자이너로 꼽히는 이영희 씨(사진) 얘기다. 마흔 살에 한복 디자인을 시작해 올해로 40년을 맞은 이씨의 발자취를 되짚는 전시회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9일까지 이어지는 ‘이영희展-바람, 바램’이다. 이씨의 대표 작품은 물론 그동안 그가 모은 진귀한 한복 관련 사료 등이 전시돼 한복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복이 우리 생활 속에 배어들게 하기 위해선 불필요한 장식부터 과감히 없애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저고리의 고름을 떼어버렸다.”

이씨는 한복의 실용화를 위해 과감히 저고리의 고름을 떼어버렸고, 세계 무대에는 아예 저고리를 생략한 파격적인 한복을 선보였다. 1976년 한복을 짓기 시작해 수많은 디자인을 선보인 그의 한복 가운데 대중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옷이 바로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 일명 ‘바람의 옷’이다.

1994년 파리컬렉션에서 처음 공개된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는 ‘가장 모던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옷이며,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변화무쌍하고 무궁무진하게 보여주는 옷’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당시 르몽드 수석기자인 로랑스 베나임은 이를 ‘바람의 옷’이라 표현했다. 전통을 버린 파격적 디자인이었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한복 고유의 미학을 직관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한복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풍성한 볼거리를 두루 갖췄다. 전시장을 한복과 같은 평면 구조로 구성해 마치 실제 한복 속에 들어가서 한복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이씨의 한복 강연, 한복 제작 워크숍과 더불어 바람의 옷을 입은 모델들이 펼치는 퍼포먼스도 볼 수 있다.

“과거를 모르면 현재가 없고, 조상의 문화를 버리면 현재의 문화도 없다. 전통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전통을 알면 내가 즐거워진다.”한복의 전통을 계승한 이씨의 다양한 컬렉션과 그가 수집한 전통 유물들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한산모시의 멋을 살린 전통 한복부터 이씨가 만든 프레타포르테 기성복, 오트쿠튀르 드레스 디자인 등을 볼 수 있다. 이씨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해 온 소장품인 조각보와 비녀 족두리 버선 꽃신 등도 눈길을 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