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탄생 100년] 신념과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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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한국호, 다시 기업가 정신이다
아산 기업가 정신의 뿌리
김성훈 울산대 경영대학 교수

아산이 자립 경영을 고수한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아산은 신규 사업 진출을 결정할 때는 항상 국내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자동차, 조선, 중장비, 전자 및 반도체 등은 규모의 경제 효과가 워낙 커서 작은 내수시장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글로벌 산업들이다. 이를 명확히 알았던 아산은 사업 초기에는 선진 기업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빠르게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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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1960~1970년대 우리나라와 현대그룹의 위상에 비춰볼 때 글로벌 다국적 기업과의 대등한 협상 자체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71년 조선업 진출 시 기술 도입을 위해 처음 접촉한 독일의 아게베세조선소는 도면과 용역비로 580만달러, 판매수수료로 척당 선가의 5%를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당시 국내 기업 평균 매출이익률이 5%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처럼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면서 이윤을 내기가 어려웠다. 자동차 사업 진출 때 포드가 요구한 무리한 계약 조항들도 아산으로 하여금 독자노선을 추구하게 한 자극제가 됐다.마지막으로 다국적 기업의 도움 없이도 독자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과 경험이 있었기에 자립 경영이 가능했다. 아산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1952년 UN군 묘지 단장, 1965년 태국 고속도로 공사,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 등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었다.
이렇듯 아산의 ‘하면 된다’는 신념은 홀로서기를 하는 데 핵심 자산이 됐다.
융합·협업과 네트워크 경영이 강조되는 요즘에도 핵심 기술과 역량 확보 없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산의 자립 경영이 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김성훈 < 울산대 경영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