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도입 임박한 구글세, 다국적 기업 조세회피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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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시행 가능성 커진 ‘구글稅’구글세 도입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달 초 페루 리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구글세 도입의 근거인 ‘국가 간 세원 잠식 및 소득이전(BEPS)’에 관한 대응 방안이 승인됐다. 구글세는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협의의 개념으로, 포털사이트가 얻는 수익에 대해 콘텐츠 제공업체가 준조세 형태로 받아가는 저작료나 사용료를 말한다. 다른 하나는 구글, 애플, 아마존 등과 같은 다국적 정보기술(IT) 업체가 고세율 국가에서 얻은 수익을 지식재산권 사용료, 이자 등의 명목으로 저세율 국가의 자회사로 넘겨 조세를 회피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다국적 기업 조세회피 심각…세계 법인세수의 4~10%
조세회피 지역 페이퍼컴퍼니 통한 탈세 차단이 목적
IT·제조업 불균형 해소 기대…뇌물 등 부패도 줄어들 것
"국가 간 조세협약의 허점을 악용해 이자 배당세나
주식 양도세를 최소화하려는 우회 투자 관행에 제동을 걸어
‘제2의 론스타’ 사례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주목적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BEPS의 대상이 되는 구글세는 이 개념이다. 다국적 IT 기업은 국가 간 법인세율 차이를 악용해 세금을 회피해 왔다. 고세율 국가에 있는 해외법인이 거둔 이익을 지식재산권 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저세율 국가의 자회사로 넘겨 비용을 공제받는 방식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급한 사용료와 수수료의 적정성을 철저히 따져 비용 공제를 상당 부분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간단한 예로 다국적 IT 기업의 상징 격인 구글이 세금을 피해가는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보자. 첫 단계로 예컨대 세금이 없는 조세회피 지역인 룩셈부르크에 구글 자회사인 ‘구글 룩셈부르크’를 설립한다. 구글 룩셈부르크는 전 세계 구글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모이게 될 장소다.
그 다음 소득이전 단계로 구글 본사는 구글룩셈부르크에 미국을 제외한 해외법인의 지식재산권 등 모든 소득원천을 넘긴다. 확보한 지식재산권 등을 활용해 구글룩셈부르크는 전 세계 구글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해외법인으로부터 거액의 로열티를 받는다. 구글 본사 소재국인 미국은 ‘세원 잠식’을 당하는 대신 자회사가 있는 룩셈부르크는 ‘소득이전’이 발생한다.
이전가격 활용 조세회피 원천봉쇄최종 조세회피 단계에서는 받은 로열티에 대해 법인세를 내는 게 원칙이다. 구글 룩셈부르크는 조세회피 지역에서 모든 업무를 총괄하므로 비거주자(외국인)로 간주돼 이 국가의 세법을 적용받는다. 대부분 조세회피 지역은 법인세율이 아주 낮거나 아예 부과하지 않아 세금을 적게 내거나 한 푼도 안 낼 수 있다. 구글 본사가 로열티를 받았다면 미국의 세법이 적용돼 35%의 법인세가 부과된다.세계 3대 조세회피 지역은 케이맨제도, 말레이시아 북동부, 아일랜드가 꼽힌다. 최근에는 자본 통제가 심한 말레이시아 북동부는 싱가포르와 홍콩 마카오로, 재정위기를 겪은 아일랜드는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로 이동하고 있다. 조세회피 지역에 속한 국가는 고용과 소득 창출, 기술 이전 등을 겨냥해 구글 등과 같은 다국적 기업에 세금 혜택을 부여한다.
이자비용 공제 제도도 앞으로 대폭 강화된다. 해외법인의 자본을 최소화하고 대출이자로 얻은 수익을 빼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자비용을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A·기업의 현금창출 능력)의 10~30%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조세회피 지역에 세운 자회사나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우회 투자로 조세를 회피하거나 절세하는 수단도 차단될 전망이다. 국가 간 조세협약의 허점을 악용해 이자 배당세나 주식 양도세를 최소화하려는 우회 투자 관행에 제동을 걸어 ‘제2의 론스타’ 사례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주목적이다.
5년뒤 5000억弗 법인세 증발 추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0년대부터 조세회피 지역에 대한 세금 부과 방안을 고심해 왔다. 2000년대 들어 다국적 IT 기업을 중심으로 이 지역을 통한 조세회피가 급증함에 따라 G20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해 지난 5일 ‘BEPS 대응 관련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난항이 예상됐던 구글세 도입 방안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데에는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OECD는 BEPS로 인한 법인세 수입 감소액이 매년 세계 법인세 수입액의 4~1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1000억~2400억달러(약 116조5000억~279조7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른 시일 안에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법인세 수입 감소액이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5년 후에는 BEPS로 인한 법인세 수입 감소액이 5000억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각국이 구글세를 본격 도입하면 재정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감소와 경기부양 차원의 대규모 재정지출로 대부분 국가가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50%에 달할 정도다.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를 맞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던 IT와 제조업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IT업종은 ‘수확체증의 법칙’, 제조업은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IT 기업에 대해 구글세가 부과되지 않으면 두 업종의 속성상 불균형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재정수지 개선에 기여할 것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신(新)러다이트(IT 파괴) 운동 등 기형적인 IT 급성장에 따른 사회병리 현상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제조업 부활 정책을 구글세 도입 논의와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IT 업종의 확산으로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뇌물 공여가 오히려 늘어나는 ‘부패의 수수께끼’도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이미 60여개국이 찬성한 BEPS 대응 방안은 다음달 터키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 확정된다. 합의국은 국가별로 내년 세법 개정안에 조세회피 방안을 단계적으로 반영, 이르면 2017년부터 구글세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