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늘어나는 문화재 도난…도둑맞은 3만점 중 회수율 17%뿐

신라시대 유물 등 도난 잇따라
최근엔 밀반출 쉬운 고문서 타깃

경찰, 특별단속 등 수사 강화
문화재 전문수사관 44명 배치
대전지방경찰청은 지난 8월 이순신 장군의 종가에서 임진왜란 상황보고서인 ‘장계별책’ 등 고문서를 훔쳐 문화재 매매업자에게 넘긴 용의자와 장물업자 등을 검거했다. 사진은 도난당했다 찾은 장계별책과 다른 서적들. 연합뉴스
올 4월 경북 경산에서 신라시대 고분 발굴을 진행하던 영남대 발굴팀은 지역 주민으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1년 전 비슷한 장소에서 천막을 치고 땅을 파는 수상한 사람들을 봤다”는 것이다. 곧 관련 조사가 시작됐지만 초기에는 도굴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문화재청 조사팀은 허위신고로 결론 내리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지난 6일 경산경찰서는 해당 고분을 도굴한 일당을 검거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께 심야시간대를 틈타 임당동 고분(국가사적 516호)과 부적리 고분을 도굴했다. 곡괭이와 삽으로 굴을 파고 귀걸이, 허리띠, 장신구 등을 훔쳤다.관련 전문가 집단인 문화재청도 도굴이 없었다고 결론 내린 사건을 경찰이 끈질기게 추적해 범인 검거에 성공한 것이다. 경산서 관계자는 “탐문 수사를 통해 도굴꾼에 대한 첩보를 입수해 검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화재와 관련된 범죄는 최근 들어 크게 늘고 있다. 문화재 관련 법 위반(문화재보호법,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으로 경찰에 검거된 사람은 2010년 102명에서 지난해 218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경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문화재 전문 수사관을 양성하고 있다.

한 번 도난당하면 회수율은 17%

경찰청은 지난 8월부터 석 달간 문화재 관련 특별단속을 하고 있다. 성과가 뛰어난 우수한 경찰관 4명을 특진시킬 예정이다. 이처럼 문화재 관련 범죄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한 번 도난당하거나 해외 밀반출되면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1985년 이후 30년간 도난당한 문화재 2만7675점 중 회수한 물건은 17%인 4757건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특히 고문서 도난 범죄가 늘고 있다. 안승준 한국고문서학회 부회장은 “중국 상인들이 국내 고문서 유통 가게를 찾아 서적들을 싹쓸이해 밀반출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상대적으로 눈길이 가는 도자기 등과 달리 서적은 공항 세관에서도 전문 능력이 없어 문화재 밀반입을 판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피해자가 도둑을 맞고도 자신이 어느 정도의 피해를 봤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종가에서 중요 고서적을 훔쳤다가 지난 8월 대전지방경찰청에 의해 검거된 김모씨(55)가 대표적이다. 김씨는 이순신 장군의 15대 종부(宗婦·종가의 맏며느리)인 최모씨(59)에게 집안정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장계별책 등 고서적 112권을 자신의 집에 감췄다가 문화재 매매업자에게 팔아넘겼다.

장계별책은 이순신 장군이 1592~1594년 선조와 광해군에게 올린 임진왜란 상황보고서를 모아 펴낸 필사본이다. 대전청 관계자는 “피해자가 고서에 대한 지식이 적어 범인이 쉽게 빼돌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안 부회장은 “문화재 전문 도굴꾼과 판매책들은 일단 물건을 손에 넣으면 사건이 잊혀질 때를 기다리며 10년간 시장에 내놓지 않는 게 관례”라며 “일부 문중에선 도둑맞은 고서들을 빨리 되찾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범인에게 사례금을 내걸기도 한다”고 귀띔했다.문화재 전문 수사관 양성

경찰청은 문화재 전문 수사관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44명의 문화재 전문 경찰을 선발해 일선 지방경찰청에 배치했다. 앞으로 경찰공무원 인사운영 규칙을 개정해 문화재 담당 경찰은 다른 부서로 배치하지 않고 전문성을 쌓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전통문화교육원에 전문 교육과정을 개설해 수사관을 교육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학계·종교계·문화재 수리기술자 등 전문가 12명을 ‘문화재 수사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자문위원은 정기적으로 자문위원회에 참석해 범죄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경찰 수사에 도움을 준다.경찰 수사에 앞서 문화재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내 문화재 조사 및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승운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모든 지자체에서 학예사를 채용하면 문화재 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지만 예산 부족 등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