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장기' 간…"중년 남성, 6개월마다 검진받아야 암 예방"

이지현 기자의 생생헬스 - 건강 위협하는 간 질환

암 사망, 폐 다음은 간
40~50대 남성은 암사망률 1위…간 질환 경제손실 7조 넘어

문제 생겨도 겉은 멀쩡
고위험군도 모르는 경우 많아…피로·구토 지속 땐 병원 찾아야

중년 남성, 간 관리 필수
간암 조기발견하면 생존율↑…CT·MRI 검사 고려를
오는 20일은 대한간학회에서 지정한 ‘간의 날’이다. 간 질환의 심각성을 알고 예방하자는 뜻에서 지정한 것이다. 한국은 ‘간염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간 질환자가 많은 나라다. 간염 등 간 질환이 간암으로 발전하는 사례도 많다. 지난해 사망원인 1위는 암이다. 인구 10만명당 150.9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이 중 간암 사망자는 22.8명이다. 폐암(34.4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경제활동을 하는 40대와 50대 남성의 경우 암 사망자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간암으로 사망한다. 간암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3조7000억원으로 각종 암 중 가장 크다는 분석도 있다. 간 조직이 굳어지는 간경화 등을 포함하면 간 질환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은 7조원이 넘는다. 막대한 사회비용을 유발하는 각종 간 질환과 예방법 등에 대해 알아봤다.간은 인체의 화학공장

간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다. 무게만 1.2~1.5㎏에 달한다. 오른쪽 횡격막 아래에 있는 간은 인체에 흡수된 각종 물질을 처리하고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간은 혈관을 통해 들어온 영양분을 가공해 인체에 필요한 물질로 바꾸고 해로운 성분을 해독한다.

이 때문에 ‘인체의 화학공장’으로 불린다. 단백질 등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만들어 저장하고 탄수화물, 지방, 호르몬, 비타민 및 무기질 대사에 관여한다. 소화 작용을 돕는 담즙산을 생성하고 몸에 들어오는 세균과 이물질도 제거한다.
이 같은 간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몸에 필요한 혈액응고 물질 등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잇몸, 코 등에서 쉽게 피가 난다. 멍도 잘 든다. 약물 술 등 독성물질을 해독하지 못해 인체의 방어 기능이 약해진다. 호르몬 분해나 대사 작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인슐린이 잘 분해되지 않고 저혈당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간은 기능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도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침묵의 장기’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간에 문제가 생겨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 만약 특별한 이유 없이 피로 식욕감퇴 메스꺼움 구토 소화불량 등의 증상이 계속되면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받아야 한다.

간염→간경화→간암으로 번져엄순호 고려대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 질환은 간염에서 간경화로, 간경화에서 간암으로 점차 악화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간에 염증이 생기는 간염 증상이 심해지면 간 조직이 단단하게 굳는 간경화로 가고 상태가 더욱 나빠지면 간암이 되는 것이다. 국내 간암 환자의 70% 정도는 바이러스성 간염인 B형 간염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초기 단계인 간염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염은 주로 바이러스에 감염돼 생긴다. 간염 바이러스는 A형, B형, C형, D형, E형 등 5가지로 나뉜다. 이 중 B형, C형, D형은 간암을 일으킬 수 있다. 한국은 각종 간 질환자가 많은 나라다. 전체 인구의 5~10%가 만성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가 많다. 국내 만성 간 질환자의 60~75% 정도는 B형 간염 바이러스와 연관이 있다.

안상훈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성인 남성의 술 소비량이 많은 것도 간 질환자가 많은 원인”이라며 “쉬지 않고 일하는 직장인의 과로 및 스트레스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간염 바이러스는 간염 환자와의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 간암을 일으키는 B형, C형, D형은 환자의 혈액이나 분비물이 눈 입속 등의 점막이나 상처 난 피부에 닿으면 감염될 수 있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환자와 접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A형과 B형 간염 바이러스는 백신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간암, 조기 진단 중요

간암은 간세포에 종양이 생긴 것을 말한다. 간암이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장기로 전이되기 전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49% 정도다. 하지만 몸속에서 암 세포가 퍼져 먼 곳에 있는 다른 장기로 전이됐을 경우 생존율은 3%를 넘지 못한다. 미리 찾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40세 이상 B형이나 C형 간염 환자 등 간암 고위험군은 매년 건강검진을 할 때 초음파 검사를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받는 사람은 33.6%에 불과하다. 위암(73.6%), 대장암(55.6%) 검사를 받는 사람에 비해 적다.

간암 고위험군의 상당수가 제대로 검사받지 않아 본인이 간 질환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간암은 전파속도가 비교적 빠른 암이다. 이 때문에 현재의 검사주기가 길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영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고위험군 간암 검사주기를 1년에서 6개월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며 “초음파 외에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의 검사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도움말=엄순호 고려대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임영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안상훈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