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충당금 더 쌓아라"…한계기업 신속정리 압박

진웅섭 금감원장, 10대 은행장에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27일 국민·신한·KEB하나·우리·기업은행 등 10개 은행장과 만나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진 원장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은행장 초청 조찬간담회를 열어 “원활한 구조조정과 충분한 충당금 적립 등 선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다만 “기업 구조조정에서 (은행이 해야 할) 핵심 부분은 정확한 옥석 가리기”라고 강조했다. 진 원장은 “비에 홀딱 젖은 기업에 우산을 씌워 줄 필요는 없다”며 “회생 가능성이 없는 한계기업을 신속하게 정리함으로써 자원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은행들은 다음달 초 완료를 목표로 부실 징후가 있는 1934개 중소기업의 신용위험평가를 진행 중으로 회생 가능성을 과거보다 엄격하게 파악할 계획이다. 대출채권 부실화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도 늘릴 계획이다. 추가 적립해야 할 충당금 규모가 은행권 전체로 2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등 은행들의 4분기 실적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시중은행장은 “기업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상당하다”며 “어떤 기업을 구조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가 좀 더 분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간 정해놓고 하는 구조조정, 기업들 불안”진 금감원장이 주재한 27일 조찬 간담회에서 10명의 시중은행장은 한계기업을 솎아내야 한다는 데엔 공감했다. 하지만 ‘연내에 살생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시한을 정해 놓고 추진하는 것 등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간담회가 끝난 직후 만난 한 시중은행장은 “재무제표만 봐선 옥석을 가릴 수 없다”며 “장기 수익창출 능력을 봐야 하기 때문에 기업 구조조정도 시간을 길게 보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장은 “구조조정에 대한 얘기가 예고 없이 나온 측면이 있다”며 “기업인들이 우리 회사 어떻게 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한다”고 전했다. 진 원장이 이날 “이미 (구조조정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고 밝힌 것과는 다른 얘기다.

금감원이 은행들에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으라고 주문함에 따라 주요 은행의 4분기 이익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한국기업평가는 조선, 해운, 건설 등 부실위험업종의 기업여신 중 10%만 고정 이하(3개월 넘게 연체)의 부실로 분류하더라도 은행들이 추가로 적립해야 할 충당금은 1조745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약 6조원이었다.

박동휘/김은정/김일규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