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산수·채색 불화…고미술 2000점 '화려한 유혹'

고미술상 400곳 합동, 10일까지 수운회관서 특별전
구석기 유물·도자기·서화·일제강점기 문화재 등 망라
조선 중기 화가 허주 이징이 금가루로 그린 산수화.
허주(虛舟) 이징(1581~?)은 산수, 인물, 영모(翎毛), 초충(草蟲) 그림에 뛰어났던 조선 중기 화가다. 세상을 떠난 뒤에는 ‘본국제일수’로 평가받았다. 1645년 소현세자를 따라 중국에 건너간 그는 화가 맹영광(孟永光)에게 지도를 받고 조선에서 보기 드물게 채색화로 명성을 얻었다. 금가루를 활용한 작품 ‘금니산수도(金泥山水圖)’는 섬세하고 우아한 필치와 단아한 구성이 일품이다.

허주의 금니산수도를 비롯해 문화·예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 2000여점을 엄선해 보여주는 ‘한국 고미술 특별전’이 오는 10일까지 서울 경운동 수운회관 1~4층 전시관에서 열린다. 전국 고미술상 400여곳의 연합단체인 한국고미술협회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조상들의 삶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도자기 800여점을 비롯해 서화 500점, 목기 100여점, 민예품 500여점이 나와 있다. 신석기시대 유물부터 고려시대 청자, 조선백자, 성리학에 기초한 진경산수화와 근대 한국화, 일제강점기 문화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기회다.고려시대 불교서적을 보관했던 상자인 ‘어피연당초문경전함(魚皮蓮唐草文經典函)’, 매화나무에 앉은 새 두 마리가 정답게 지저귀는 모습을 문양으로 새긴 조선 초기의 도자기 ‘청화백자매죽조문병(菁華百磁梅竹鳥文甁)’, 금가루를 혼합해 제작한 청자불상 ‘약사여래입상’, 조선 영·정조 때 김홍도 등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궁중화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 고려 말에 수묵과 채색으로 왕실의 불교 행사를 묘사한 ‘석가수행도’ 등은 일반에 처음 공개하는 국보급 작품이다.

청화백자매죽조문병
고려 왕실에서 사용했던 ‘어피연당초문경전함’은 악어 껍질이라는 특이한 재료를 사용한 점 외에도 겉면을 연꽃과 당초 무늬로 정교하게 그려 고려시대 세밀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다. ‘석가수행도’는 공민왕을 가운데 모시고 선녀와 승려들이 왕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채색화 기법으로 묘사한 고려 불화다. 불교의식을 거행하는 사람들 앞에 호랑이와 거북 등을 색다르게 배치한 점에서 불교 미술의 귀중한 사료라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일본 대마도가 우리 땅이란 사실을 입증하는 고지도도 걸렸다. ‘경상도 일원고지도’에는 임진왜란 전에 대마도가 조선 영토로 인식됐던 흔적을 보여준다. 일본이 독도를 국제분쟁 지역화한다면 대마도도 국제분쟁 지역으로 만들어 맞불을 놓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선 후기 화가 석연 양기훈을 비롯해 소정 변관식, 소림 조석진, 청전 이상범, 의재 허백련, 이당 김은호, 심산 노수현, 고암 이응로, 운보 김기창 등 한민족의 보편적 정서를 독특한 예술 세계로 승화한 대가들의 그림도 관람객을 반긴다.

갈대밭에서 기러기 떼가 날아드는 장면을 그린 석연의 ‘노안도(蘆雁圖)’, 눈으로 덮인 산세의 아름다움을 품격있게 그려낸 소정의 ‘설경산수도’, 정형적인 화면 구도에 골격미가 돋보이는 심산의 작품, 안개와 수풀이 뒤덮인 산을 소재로 한 청전의 그림 등에서 대가들의 독특한 화풍을 확인할 수 있다. 고목에 핀 흰 매화와 청매화, 붉은 매화를 선비적인 문인의 삶으로 승화한 두 폭의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 바위에서 피어오른 모란과 나비를 차지게 잡아낸 ‘석화접충도(石花蝶蟲圖)’ 등도 눈길을 끈다.김종춘 한국고미술협회장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선조들의 지혜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침체해 있는 고미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무료. (02)732-224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