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쌀' 사태] 쌀 재고 쌓이고 가격 폭락…10조 썼지만 농민은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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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부딪힌 '쌀 수급정책'벼농사 풍작과 쌀 소비 감소 추세가 겹치면서 쌀값이 작년보다 8% 하락했다. 정부는 쌀 20만t을 사들여 가격 하락을 막겠다고 밝혔지만 농민들은 추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수매량을 늘리는 단기 대책만으로는 고질적인 ‘남아도는 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내 쌀 시장엔 보조금으로 야기된 수요-공급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직불금으로 소득 보전해줘 생산량 안줄어
"보조금으론 대란 못 막아…감산 검토해야"
○반복되는 쌀 과잉 문제정부는 올해 쌀 생산량이 430만t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수요량(400만t)보다 30만t 많다. 이 때문에 최근 산지 쌀값(80㎏)은 15만원대까지 추락했다. 2013년 17만4707원이었던 쌀값이 계속 떨어진 것이다.
쌀 소비량은 매년 2.5%씩 줄어들고 있지만 쌀 생산량이 줄지 않고 있어서다. 논 면적이 연평균 1.7%씩 감소하고 있긴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재배 면적당 쌀 생산량은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남아도는 쌀을 해결하기 위해 쌀 가공식품 육성과 수출 확대를 추진해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2010년 4000t이었던 쌀 수출량은 지난해 2000t으로 반토막 났다. 국내 가공용 쌀 수요는 2010년 54만9000t에서 지난해 53만5000t으로 감소했다.○보조금의 역설
정부와 국회가 직불금 등 농민들의 소득 보전 대책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쌀 시장 수요-공급 기능을 조정하는 근본적인 정책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쌀값은 아무리 폭락해도 변동직불금 제도에 따라 목표가격(현재 18만8000원)과 산지가격 차액의 85%를 농민에게 보전해준다. 이 직불금 때문에 농가는 정부의 목표가격 대비 99% 안팎의 쌀 가격을 보장받는다. 지난해 쌀 목표가격 인상 수준을 정할 때 정부는 17만9686원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여야는 정부를 배제한 채 18만8000원으로 합의했다. 생산비(12만원대)보다 훨씬 높다.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목표가격을 너무 높게 잡으면 쌀 생산 구조조정이 어려워진다고 국회를 설득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농민들에게 지급한 쌀 직불금은 10조원에 달한다.
벼 재배 여부와 상관없이 논 면적에 따라 지급하는 고정직불금(㏊당 100만원)과는 달리 변동직불금은 벼를 심은 농민에게만 지원한다. 농민 입장에서는 다른 작물을 심었다가 실패하느니 가격이 떨어져도 차액을 직불금으로 보전해주는 벼농사를 짓는 게 유리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변동직불금 수급조건에 벼 재배 의무만 없애도 다른 작물 재배가 활성화되면서 벼 재배 면적이 10년에 걸쳐 2만8000㏊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근본적 구조조정해야벼 생산 과잉을 부르는 보조금 정책을 고쳐 쌀 농업 구조조정에 착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생산 면적을 조정하지 않고는 반복되는 쌀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벼 재배 면적을 줄이거나 콩이나 조사료 등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농민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하지만 재정 확보 문제와 대체작물의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휴경(休耕) 보조금 제도도 논의되고 있다. 2003~2005년 정부는 휴경 조건으로 임차료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보조금을 쌀 생산 농가에만 주다 보니 생산을 촉진하는 요인이 됐던 게 사실”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쌀 직불금정부가 2005년 추곡수매제를 폐지한 대신 새로 도입한 농민 보조금 제도. 논 면적에 따라 고정된 액수를 지급하는 고정직불금(㏊당 100만원)과 목표가격 아래로 쌀 가격이 떨어지면 차액의 85%를 보전해주는 변동직불금이 있다. 현재 쌀 목표가격은 18만8000원(80㎏ 기준)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