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역사 행남자기, 더미디어에 200억에 팔려

외국산에 밀린 '도자기 4대 가업'…지분 팔아 자금 조달도 한계 봉착

시장 60% 외국산이 점유
소비패턴 변화 대응 늦고 화장품 등 신사업도 '쓴 맛'
행남자기 3세인 김용주 회장(왼쪽)과 4세인 김유석 사장. 한경DB
“올 것이 왔다.”

국내 최장수 도자기 업체인 행남자기 매각 소식을 접한 업계는 ‘남의 일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 행남자기 매각설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흘러나왔다.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장에서 행남자기 제품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여파로 회사 매출은 매년 곤두박질쳤다. 지난해에는 영업적자로 돌아서는 등 수익성마저 악화됐다.행남자기 매각은 국내 도자기 업체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고가품 시장에서는 포트메리온, 로열코펜하겐 등 유럽 브랜드에 밀리고, 저가품에선 중국산 인도네시아산 등에 치인다. 행남자기는 계속된 업황 부진 속에 지분을 팔아 자금조달을 시도했지만 결국 회사를 넘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

행남자기는 국내 식기류 제품 생산을 시작하며 도자기산업을 이끈 토종 기업이다. 고 김창훈 회장이 1942년 목포에서 ‘행남사’를 창업했다. 1953년 커피잔세트 생산, 1963년 홍콩 수출,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공식만찬 식기 채택 등 행남자기가 걸어온 길은 국내 도자기 업계의 역사였다.

1986년 3세인 김용주 회장이 대표에 올랐다. 2012년 김 회장의 아들 김유석 사장이 대표로 취임하며 4세 경영을 잘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해외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밀려들면서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2012년 매출 461억원에서 2013년 439억원으로 줄었으며 지난해 424억원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24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전환했다.
행남자기는 오너 지분을 팔아 자금조달을 시도했다. 지난해 6월 김 사장의 할머니인 김재임 씨가 보유한 지분 전량(10.52%)을 매도했고 그에 앞서 김태성·태형 씨, 김흥주 씨가 5.96%, 3.31%, 0.83% 지분을 처분했다. 오너 일가의 전체 보유 지분은 기존 58.68%에서 38.06%로 크게 낮아졌다.

당시 시장에선 경영권 매각 수순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회사 측은 ‘자금조달 목적’이라며 부인했다. 행남자기는 태양전지, 로봇청소기 등의 신사업으로 사업다각화를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아 철수했다. 이후 화장품, 의료기기 등 또 다른 신사업을 추진했으나 이마저 자금 확보 문제로 난항을 겪으면서 중단됐다.국내 도자기 시장은 3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국내 ‘빅3’로 불리는 한국도자기 행남자기 젠한국 등 3사의 지난해 전체 매출 규모는 1000억원대에 그쳤다. 외국산 점유율이 60%를 넘는다.

소비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패착이다. 몇 년 전부터 도자기를 ‘세트’로 구입하는 신혼부부가 크게 줄었다. 행남자기의 홈세트 판매 비중은 10여년 전 70%에서 최근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식구 수가 줄고 외식문화가 자리 잡은 탓이다.

소비패턴도 저렴한 제품을 사다 쓴 뒤 자주 바꾸는 쪽으로 바뀌었다. 대형마트들은 중국산 제품을 주로 팔고 있다.업계 한 관계자는 “도자기 회사들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조직 문화나 경영 방침도 보수적”이라며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결국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