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유일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호평…"신인 작가·배우 등용문 역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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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콘텐츠방송계에서 단막극은 ‘드라마의 꽃’으로 불린다. 적절한 형식미에 주제를 녹여내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연속극보다 생명력이 더 길기 때문이다. 연속극과는 달리 소비품이 아니라 예술품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하지만 연속성 부족으로 상품 가치가 떨어져 광고가 덜 붙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다.
단조롭지 않은 형식, 막장 없는 이야기, 극장서 영화 한 편 본 듯
지상파 방송 중 KBS ‘드라마 스페셜’(매주 토요일 밤 11시50분)만 단막극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드라마 스페셜은 지난해까지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있다가 올 들어 봄·여름·가을의 시즌제 형식으로 바뀌었다.지난달 24일 시작한 가을 시즌 ‘드라마 스페셜’의 단막극들이 뛰어난 작품성과 주제의식으로 호평을 얻고 있다. ‘짝퉁 패밀리’(극본 손세린, 연출 안준용·오른쪽 사진)는 성(姓)이 다른 가족 구성원의 생계를 담당하느라 청춘을 다 보낸 노처녀 은수가 자신만을 위한 삶을 보내려는 순간, 의붓동생 민수를 떠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가족극이다. 경쾌한 터치로 진정한 가족과 행복의 의미를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극본 김양기, 연출 이재훈·왼쪽 사진)는 4년째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희준이 또 한 번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 정체 모를 소녀 유하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결과보다는 과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위축된 청춘들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는 청춘 드라마다. ‘낯선 동화’(극본 신수림, 연출 박진석)는 아빠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단한 현실에서 행복을 찾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시청자들은 애정 어린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여태껏 드라마를 보고 시청 소감을 남겨보는 게 처음인데요. 드라마 너무 잘 봤습니다. 마치 좋은 영화 한 편을 본 것처럼 여운이 길게 남네요.” “정말 재미있네요. 막장만 보다가 오랜만에 괜찮은 드라마를 봤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드라마처럼 해피엔딩일지 아니면 배드엔딩일지, 오늘도 운명의 주사위를 던지게 되네요.”
단막극의 제작비는 일반 드라마 편당 제작비의 절반도 채 안 된다. 대부분 신진 작가가 투입돼 시청률도 낮다. 지난해 KBS는 20억원을 투자해 18억원을 회수했다. 올해도 회당 평균 8000만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상업성과 시청률이 단막극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연속극은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서는 전체 기획이나 대본에 결말이 없는 채 제작에 들어가 방영을 시작한다. 단막극은 완결성을 가진 이야기로 촬영에 들어간다. 배우들도 연속극에서는 자기 배역이나 스토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연기해야 하지만, 단막극에선 전체 그림을 보며 일정한 계획에 따라 연기할 수 있다.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에 출연한 봉태규는 “긴 호흡의 미니시리즈보다 밀도가 높고 한 편에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배우에게 높은 집중력을 요구한다”고 말했다.단막극은 고정된 틀에 매여 있는 일반 드라마와는 달리 새로운 포맷과 내용, 유행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창구다. 이 때문에 단막극은 ‘작가와 배우 양성소’이자 ‘드라마의 미래’로 불린다. 안준용 PD는 “제작 환경이 열악한 단막극을 계속 하고 싶고, 하게 되는 이유는 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갈증이 있기 때문”이라며 “예산은 적지만 더 나은 걸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응진 TV본부장은 “단막극은 모든 드라마의 시작과 끝”이라며 “드라마 장르뿐만 아니라 다큐, 예능, 교양 프로그램도 모두 단막극의 형식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