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인간에게 던지는 구원의 메시지
입력
수정
지면A36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18일 개막…바이커트 지휘“음산한 배들의 무덤에서 암초를 향해 배를 몰았네. 하지만 죽음도, 무덤도 나를 피해갔지. 이것이 저주받은 자의 운명….”
존 듀가 연출한 '파우스트'는 25~28일 세종문화회관 공연
군데군데 붉게 녹슨 거대한 고래잡이배 내부. 비닐 작업복을 입은 선원들이 흩어지자 거친 바다에서 한 남자가 홀연히 나타난다. 진실한 사랑을 찾을 때까지 바다를 헤매야 하는 저주받은 네덜란드인이다. 현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17세기 유럽인 복장을 한 모습이 고독감을 더한다. 1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1막의 한 장면이다.욕망을 채우기 위해 초현실적인 존재와 맺은 계약 때문에 고통받는 인간의 기구한 운명을 다룬 두 편의 오페라가 연달아 무대에 오른다. 국립오페라단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다. 두 공연은 주인공들이 방황하다 결국 구원받는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1840~50년대 초연된 두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올리는 것도 비슷하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대본을 쓰고 작곡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18일과 오는 20일, 22일 3회 공연한다. 네덜란드인은 영원히 바다를 떠돌아야 하는 저주에 걸린 뱃사람. 7년에 한 번 뭍에 내려 저주를 풀어 줄 진실한 사랑을 찾지만 번번이 실패한 그가 결국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는 줄거리다. 시즌 레퍼토리제를 도입한 국립오페라단이 ‘진주조개잡이’에 이어 선보이는 2015~2016시즌 레퍼토리 두 번째 작품이다. 랄프 바이커트의 지휘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베이스 연광철(달란트 역), 바리톤 유카 라질라이넨(네덜란드인 홀랜더 역)과 소프라노 마누엘라 울(젠타 역) 등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는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연광철은 1996년부터 매년 독일 바이로이트페스티벌에서 바그너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다. 핀란드 출신인 라질라이넨도 오스트리아 빈국립극장과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극장 등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파르지팔’ 등 바그너 작품을 공연했다. 무대는 현대 고래잡이배로 꾸며 1843년 초연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서울시오페라단은 창단 30주년 기념 오페라로 샤를 구노의 ‘파우스트’를 25~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천벌’,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등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하는 오페라 중 가장 널리 공연되는 작품이다. 젊음을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가 아름다운 마르그리트를 유혹해 타락시키는 등 욕망에 사로잡혔다가 구원받는 이야기다.
이번 공연은 무대디자이너 디르크 호프아커가 5막 ‘발푸르기스의 밤’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거처를 나이트클럽으로 설정하는 등 작품 무대를 현대적으로 연출한다. 유럽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존 듀가 연출을 맡았다. 윤호근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테너 이원종과 김승직(파우스트 역), 베이스 박기현과 전태현(메피스토펠레스 역), 소프라노 정주희와 장혜지(마르그리트 역)가 출연한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